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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대학 7번 떨어져도 꿈 포기한 적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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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경제

    "이 디자인을 전부 자네 혼자 한 게 맞나?"

    2001년 국내 대기업이 주최한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은 서른 살 청년 성정기 씨는 한 미국인 심사위원의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줬다. 이 미국인은 디자인 혁신의 산실인 디자인컨설팅 회사 아이디오(IDEO)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초로 노트북 컴퓨터를 디자인한 빌 모그리지였다. 이를 계기로 성씨는 아이디오 입사를 꿈꾸게 됐다. 2년 넘게 정성을 들인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마치 기적처럼 입사 통보를 받아 2004년 아이디오의 첫 한국인 디자이너가 됐다.

    스무 살 넘어 디자이너를 꿈꾸고 세계적인 산업디자인 리더로 성장한 성정기 데이라이트디자인 크리에이티브디렉터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체험한 '디자인 싱킹'을 풀어낸 책 '생각을 만드는 시간'을 최근 출간했다. 그는 미국 아이디오는 물론 독일 레드닷과 iF 디자인 어워드 등 국제 공모전을 휩쓸고, 2008년 한국디자인진흥원(KIDP) '차세대 디자인 리더'에 연속 선정되며 본보기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출발은 암울했다. 어려운 집안 탓에 군대를 먼저 다녀왔고, 이후 미술학원을 다니며 공부해 수능을 7번이나 치른 뒤에야 늦깎이 대학생이 됐다.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하고 생계형으로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 도전하는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노인을 위한 지팡이 '아이스틱'에 휴대폰과 디지털 약품 정보를 통합하는 남다른 발상을 꺼냈고, 왼손잡이를 위한 아이스크림 숟가락과 어둠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자체 발광하는 안경 등을 디자인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루나디자인을 거쳐 2013년 데이라이트로 옮겼다. 이 회사는 아이디오 출신들이 너무 거대해진 조직을 벗어나 '더 나은·다른·올바른(Better·Different·Right)' 디자인을 하자는 철학으로 창업해 글로벌 대기업과 스타트업 등 다양한 고객에게 전략 컨설팅을 한다.

    성 디렉터는 "20여 년간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 만난 멘토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서 책을 쓸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기회는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생활 초기에 긴장하고 지나치게 신중했던 것도 실수가 만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 상사를 통해 멘토는 나를 지켜주고 지켜봐주며, 내가 생각을 스스로 만들어내게 하는 일에 진심인 사람임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서툰 영어로 힘든 시절 회사 동료들에게 매일 이메일 인사를 보내며 적응해 나갔다는 성 디렉터는 "꾸준함으로 쌓이는 노력은 좋은 기억으로 보답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이한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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