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
지역에 문화재단들이 점점 늘고 있다.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모두는 물론이고 기초지자체에도 절반이 넘는 140여 곳에 문화재단이 설립됐다. 향후 더 많아질 전망이다. 지역에서 문화재단의 유용성과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인구 소멸 위기를 겪는 지역일수록 문화재단에 대한 기대가 크다. 젊은 인구를 끌어오고, 인구 유출을 막으려면 문화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지역문화재단이 하는 일은 다양하고 범위도 넓다. 지역 예술인을 지원하고, 지역민의 예술 향유를 확대하며, 생활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 각종 축제나 문화·관광 관련 이벤트도 챙겨야 하며, 공연장과 전시 공간은 물론 도서관 등 각종 문화 공간을 운영하기도 한다.
문화재단 사람들은 한정된 예산과 인원으로 이 모든 걸 하려니 힘겹기도 하지만 지역과 문화에 대한 열정으로 버틴다.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뜨거운 열정에 있다. 과유불급!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문화재단의 역할이 커질수록 민간의 역할이 줄어든다. 과장을 좀 보태면 쥐꼬리만 한 민간 역할마저 문화재단의 거대한 열정에 가려 사라지고 있다.
지역에 공공 공연장과 전시 공간이 늘게 되면 민간이 운영하는 공간은 설 땅을 잃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다 우월한 자금과 조직으로 우수한 공연과 전시를 유치하는 공공과 경쟁할 수 있는 민간은 일부 기업에서 운영하는 공간 말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티켓 가격 경쟁이 안 되고, 섭외력도 떨어진다. 더욱 심각한 건 문화예술에 대한 지역민의 인식이다. 축제는 물론이고 공연과 전시는 '공짜'라는 생각이 고착된다. 지역민을 상대로 유료 티켓을 판매할 수 없게 된 문화 공간들과 작품이 팔리지 않는 예술인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문화재단의 지원금이다. 입지가 줄어든 기획자들 역시 너도나도 공공에 몸을 의탁한다. 결국 지역에서 문화기획자와 예술가 그리고 주민은 문화재단이라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 연출된다.
누군가는 본디 지역에는 문화 공간이고 기획자고 없었기에 문화재단이 나서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백번 양보해서 어떠한 휴먼 인프라스트럭처도 없었다 치자. 그렇다면 언제까지 문화재단이 지역의 모든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문화행사를 송두리째 기획할 것인가.
문화재단의 역할을 되돌아봐야 한다. 문화재단이 직접 무료 공간을 운영하고, 무료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공짜에 가까운 공연·전시를 개최하는 게 과연 지역문화 진흥을 위해 합당한 일인지를 말이다. 문화재단은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긴요한 소임은 민간의 문화적 자생력을 북돋아 키우는 데 있다. 그래야 지역문화의 지속가능성이 담보된다. "공공이 너무 열심히 일하면 안 됩니다. 공공은 성과를 내기보다는 민간이 잘되도록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전에 고위 관료를 지낸 분이 했던 뼈 있는 말이다. 지역의 문화재단 역시 민간의 '블랙홀'이 아니라 민간의 '마중물'이 돼야 하지 않을까.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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