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31 (수)

    수사기록 오픈시대 [뉴스룸에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수사기록보다 강력한 물증 없어
    형사처벌 규정에도 공개 잦아져
    검찰·경찰의 불신 털어낼 계기로
    한국일보

    서울남부지검은 지난해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에서 압수한 5,000만 원 '뭉칫돈'의 출처를 추적하고 있다. 사진은 전씨의 자택에서 나온 한국은행이 적힌 비닐로 포장된 돈뭉치.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변호인들은 결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기록이 헌법재판소로 오는 것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려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 수사기록은 이미 제출된 전례가 있다. 쉽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들은 길바닥에 드러눕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시도하려 했다. 국회 측이 헌재에 수사기록 제출을 주문해 달라고 요청하자, 윤 전 대통령 변호인들은 온갖 법 논리를 동원해 반발했다. 그럼에도 헌재가 수사기록의 증거 채택에 문제가 없다고 밝히자, 법정에서 나가버린 변호인도 있다.

    그걸로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과는 충분히 예견됐고, 이후 변호인들의 외침은 궤변과 강변으로 점철됐다. 수사기록은 그만큼 강력하다. 국가가 허용한 합법적 강제력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는 대체 불가능한 힘이 있었다. 검찰총장을 지낸 윤 전 대통령과 검사 출신 변호인들은 수사기록에 중독된 경험이 있어 그 파괴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거다. 헌재 법정과 언론을 통해 공개된 수사기록은 결국 윤 전 대통령 파면의 1등 공신이 됐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때처럼 수사기록의 '착한' 기능을 감상할 기회는 흔치 않다. 사건 당사자와 변호인에게 수사기록은 속 썩이고 애 태우는 존재다. 검찰이 수사기록 공개에 매우 인색한 탓이다. 고소인이나 진정인이 불기소 처분서를 받게 되면 검찰을 상대로 수사기록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한다. 검찰은 사생활 침해와 수사기법 유출 우려 등을 이유로 거부한다. 당사자는 검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법원은 개인정보나 민감한 기밀이 포함돼 있지 않은 이상, 피의자 신문조서를 비롯한 수사기록을 공개하라고 주문한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하고 법원 주문에 따른다. 검찰에서 먼저 정보를 공개했다면 불필요한 송사로 이어지지 않겠지만 검찰은 관행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수사기록 비공개는 수사기관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외부에선 수사기관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기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켜켜이 쌓여 가는지 알 길이 없다. 문제 될 게 없다는 수사기관 얘기를 믿는 수밖에 없다. 검찰이 수사기록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것만으로도 우월적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검찰이 신줏단지 모시듯 꽁꽁 수사기록을 숨기다 보니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이 공소제기 후 법원에 제출된 수사기록에 대해 피고인과 변호인은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열람·등사를 신청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 16에 따르면, 피고인이나 변호인은 수사기록을 소송 준비 이외의 다른 목적으로 교부하거나 제시해선 안 된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피고인 입장에선 자신에게 좋지 않은 내용으로 가득한 수사기록을 공개할 이유가 없고,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타인에게 전달할 이유가 더더욱 없다.

    그러나 최근 이런 선입견을 깨는 사례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형 사건에서 두드러진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 수사기록이 언론사에 전달됐고, 건진법사 전성배씨 수사기록도 언론사 손에 들어왔다.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불순한 목적을 갖고 유출했을 수도 있지만, 공개로 인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사기록, 때로는 더 많이 알려질 필요도 있어 보인다.

    강철원 사회부장 strong@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