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
최근 JTBC 주말드라마로 방영된 '협상의 기술'은 대기업의 M&A 전문가와 그 팀의 활약상을 담았다. 딱딱한 협상이론서 대신 드라마라는 매체를 통해 협상의 본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드라마 속 인물에게 몰입해 협상의 당사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껴본다면 협상의 핵심은 이론이 아니라 인간 심리에 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지난 4월24일 미국 워싱턴DC 재무부 청사에서 한국 협상대표단(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미국 측 대표단(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이 2+2 통상협의를 진행했다.
협상 후 베선트 장관은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회담을 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을 봤고 다음주부터 기술적인 조건에 대해 협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로 인한 부정적 여파를 우려하는 우리 입장에선 반가운 발언이다. 그러나 마냥 낙관하기는 어렵다. 미국과 먼저 협상에 나선 일본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본과 협상에 대해 "큰 진전"이라고 자평했지만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계속 양보만 할 수 없다"고 우려 섞인 의견을 표출했다.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기점으로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했다. 이번에도 일본이 플라자합의 당시처럼 대응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다.
트럼프 1기와 2기의 무역정책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중국 견제'가 핵심목표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전통적 우방국인 캐나다, 일본, 한국 등에도 예외 없이 수용하기 힘든 '청구서'를 내민 것이다.
요즘 미국 협상단의 전면에 나선 베선트 장관은 예일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1991년 조지 소로스의 펀드에 합류했다. 1992년 영국 파운드화 공매도 당시 리스크관리 책임을 맡았고 이후 소로스펀드에서 CIO(최고투자책임자)를 역임했으며 2013년엔 일본 엔화 공매도로 10억달러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외국 정부를 상대로 커다란 수익을 창출한 경험이 있는 그는 상대국 정부의 약점을 파악하고 협상에서 이를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다.
이러한 베선트 장관이 한국과 협상 직후 긍정적인 발언을 한 배경을 신중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관세협상 과정에서 신속히 응답하고 먼저 협상에 나선 국가들에 당근을 제공하겠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낸다. 일본과 한국이 이에 부응해 가장 먼저 협상테이블에 앉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선제적으로 협상에 응한 국가와 합의에 실패한다면 뒤따르는 국가들의 협상동력 역시 약화될 것이다. 미국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한국은 중국만큼 영향력이 큰 국가는 아니지만 미국과 중국 모두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규모를 감안하면 이번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더구나 10년, 20년 뒤 세계 경제질서를 상상하면 미국이 지금과 같은 초강대국 지위를 무한히 유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이미 세계 제조업의 중심국가가 됐고 미국의 대중국 관세부과는 자국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관세협상의 중심엔 초강대국 미국, 그리고 1987년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이라는 책을 공동집필한 예측불가의 협상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 협상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철저한 준비와 시나리오 분석, 다양한 외교채널 운영 및 연대전략 구사, 데이터 기반 상호 의존성 강조 등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단독으로 힘의 균형을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유럽연합(EU), 일본, 아세안 등과의 공동대응이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이 특정 산업에 관세를 부과하면 자국 산업에도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음을 구체적 데이터로 설득해 양국이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이해시켜야 한다. 예컨대 한국산 배터리가 없으면 미국 전기차산업에도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전개가 필요하다.
미국 엘리트층은 10년 또는 그 이후 미국의 위상 및 중국과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 협상 대표들은 그들의 '걱정거리' 중 한국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 이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아 한국과 미국이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이번 협상은 단순히 관세율 몇 퍼센트를 조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수십 년 한국 경제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협상의 기술이야말로 지금 한국이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무기다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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