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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기자의 시각] “너도 나만큼 힘들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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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지난 20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시네마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 특별상영회에 1980년 ‘사북사건’ 당시 대치했던 진문규(맨 왼쪽)·최병주(왼쪽에서 두 번째)·이종환(오른쪽에서 두 번째) 전 영월경찰서 순경과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이 손을 마주잡고 화해하고 있다./조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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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만나 손 맞잡고 대화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난주 다큐멘터리 영화 ‘1980 사북’(감독 박봉남) 상영회 취재를 마치고 강원도 영월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 진문규(72) 전 영월경찰서 순경의 전화를 받았다. 1980년 4월 정선군 사북읍 동원탄좌 광부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 등에 반발해 일으킨 총파업 사건인 ‘사북 사건’ 때 그는 목숨을 잃을 뻔했다. 노동자 3000여 명이 파출소를 점거하고 사무실을 부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탄광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통로인 굴다리에 진입하려 하자 광부들은 다리 위에서 돌을 던졌다. 방패도 없었던 경찰들이 잇따라 쓰러졌다. 당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약 7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성난 광부들이 던진 돌에 진 전 순경의 두개골도 함몰됐다.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그는 한때 광부들이 정말 미웠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45년 만에 만나 손을 맞잡은 사람이 이원갑(84) 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 경찰에게 돌을 던졌던 광부들을 이끌던 이였다. 기자와의 전화에서 순경이었던 노인은 들떠 있었다. 45년 만에 영화관에서 만난 둘은 바로 다음 날에도 통화를 하면서 “다시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간 경찰과 광부들은 자신들을 ‘일방적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다. 광부들은 사건이 끝난 뒤 자신들을 잡으러 온 보안대 군인과 경찰에게 폭행·고문당한 기억만 떠올렸다. 경찰은 방패도 제대로 없는 자신들에게 ‘칼돌’을 무자비하게 던지던 광부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지난 20일 영화 상영회를 찾은 사북 주민과 전직 경찰들은 ‘나만큼 저 사람들도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고 한다.

    사북 주민들은 “영화를 곰곰이 보니 사건 초기 피해자들은 오히려 경찰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회장은 상영회에서 광부들을 대표해 “날카로운 돌을 던져 경찰들을 다치게 한 것을 사죄한다”고 했다. 영화를 본 경찰들도 “광부와 부녀자들이 군경에 고문당한 내용을 진술하는 부분에선 정말 보기가 힘들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진 전 순경 아내는 그동안 “피에 젖은 당신의 경찰복을 빨면서 광부들을 원망했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과 영화를 본 뒤엔 “내 남편만큼 광부들과 그 아내들이 가엾더라”고 했다. 영화를 통해 각자의 상처를 보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 근현대사에서 피해·가해자가 평행선을 달리는 사건 관련자들이 이번처럼 서로에게 사과하고 상대방의 피해를 보듬은 적이 처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광부 이원갑씨와 전직 경찰의 포옹은 유난히 더 가슴에 남았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서로를 가해자로 몰아세워 왔다. 하지만 이젠 그 말을 먼저 해보자. “너도 나만큼 힘들었구나.”

    [장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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