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우라늄 옮긴 듯… “시간표 늦췄을 뿐”
공습 역부족 회의론… 백악관, 유출 인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동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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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첨단 폭탄 세례를 받은 이란 핵시설이 말끔하게 제거되지 않았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초기 평가 결과가 언론 보도로 공개됐다. “완전히 파괴됐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랑을 뒤집는 분석이다.
“핵물질·생산설비 온존”
24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은 미군이 21일 이란 핵시설 3곳을 최신 초대형 관통탄(벙커버스터) 등을 동원해 타격했지만 농축우라늄 등 이란 핵 프로그램의 핵심 요소는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다는 게 미 국방부 정보 담당 조직인 국방정보국(DIA)의 초기 평가 결과라고 보도했다.
CNN에 따르면 이란 피해에 대한 미군 중부사령부의 평가를 토대로 결과를 도출한 DIA는 미군 공격과 그 앞뒤로 이뤄진 이스라엘의 공격이 기껏해야 이란 핵 프로그램을 몇 달 늦추는 데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DIA가 추정한 이란 핵 프로그램 지연 기간이 6개월에도 못 미친다고 전했다. NYT는 이란이 공습당하기 전에 농축우라늄 상당량을 다른 장소로 옮겼다는 내용이 DIA 보고서에 포함됐다고 소개했다.
핵물질만이 아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핵무기용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이란의 원심분리기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결론을 보고서가 내렸다는 소식통 전언을 인용했다.
트럼프 자신감의 근거는
애초 공습만으로는 이란 핵시설을 해체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 중론이었다고 한다. 미국 연방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인 마이크 퀴글리(민주·일리노이) 의원은 WP에 “결국 지상군이 투입돼야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얘기를 정보당국으로부터 몇 년간 들었다”고 말했다. 더욱이 공습마저 충분하지 못했다. NYT는 산 아래 250피트(약 76미터) 깊이에 있는 포르도 지하 핵시설을 파괴하려면 길면 몇 주간 같은 곳을 폭격해야 한다는 게 군 관계자들 조언이었다고 짚었다. 하지만 미군 공습은 한 차례가 전부였다.
23일 위성에서 촬영된 이틀 전 미군 공습 이후 이란 포르도 핵시설의 모습. 24일 위성기업 막사르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사진이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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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만만했다. 공습 당일인 21일 대국민 담화에서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이 완전히 제거됐다고 장담한 그는 23일에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우리가 때린 이란 내 시설들은 전적으로 파괴됐고 모두가 그것을 안다. 오직 가짜뉴스만이 이를 폄하하려 다른 얘기를 한다”고 썼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 주장과 DIA 초기 평가는 상충하는 측면이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끈하며 이날 다시 SNS에 “가짜뉴스 CNN과 망해 가는 NYT가 손잡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군사 작전 중 하나를 폄하하려 하고 있다”고 적었다.
의심하지 말라는 백악관
백악관이 보고서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엑스(X) 글에서 “(DIA 초기 평가가) 일급비밀로 분류됐는데도 정보당국 내 익명의 하급 실패자에 의해 CNN에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하하고 이란 핵 프로그램 제거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전투기 조종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시도가 명백하다”고 부각했다.
내용도 철저히 반박했다. 레빗 대변인은 DIA 평가에 대해 “완전히 틀렸다”며 “3만 파운드(약 13톤) 폭탄 14발을 목표물에 완벽히 투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누구나 알고 있다. 바로 완전한 소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엔 만약 이란이 폭격당한 우라늄 농축 시설을 재건하려 한다면 다시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앞서 이같이 밝히고, 미국의 이란 내 핵시설 3곳 타격 작전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수십년 후퇴시켰다며 “완전히 제거됐다”(total obliteration)고 재차 강조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한 만큼 공방을 벌이기에 이르다는 신중론도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3일 성명에서 “(사용된 폭탄의) 폭발력과 진동에 특히 민감한 원심분리기 특성을 고려할 때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 아주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현재로서는 IAEA를 포함해 아무도 지하 핵시설의 피해를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의 기밀 보고서가 더 많은 정보가 수집된 뒤 수정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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