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총리 "무역이 무기화됐다" 비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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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 외교·안보 수장이 한자리에 모인 회의에서 최대 화두는 ‘트럼프 관세’였다. 동남아시아 외교장관들은 미국발(發) 고율 상호관세가 역내 안보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공동 대응 필요성에 뜻을 모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장관회의 참석자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관세 부과를 통보한 데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글로벌 경제 질서 안정을 위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들은 공동성명 초안에서 “우리는 세계 무역 긴장 고조와 국제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 증가, 특히 관세 관련 일방적 조치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관세가 역효과를 낳고 세계 경제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이는 아세안의 경제 안정·성장에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9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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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회의에는 동남아 외교 수장은 물론, 왕이 중국 외교부장,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 주요국 인사들도 참석했다. 한국에서는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대신 참석했다.
아세안 외교장관회의는 단일 지역 협의체를 넘어선 아시아 최대 규모 외교·안보 연례 회의로 꼽힌다. 회의 직후에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10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FR·11일)도 연달아 열린다.
그간 이 회의에서는 미얀마 내전, 남중국해 갈등, 북한 비핵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역내외 안보 현안을 다뤘다. 무역 갈등이 핵심 의제로 부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의 관세 공세가 아시아 경제 전반에 충격을 주면서 경제 문제가 안보 회의 테이블의 한가운데 오르게 된 셈이다.
특히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14개국에 상호관세를 새로 통보하면서 회의장 분위기는 한층 무거워졌다. 백악관으로부터 관세 서한을 받은 동남아 국가는 라오스(40%) 말레이시아(25%) 미얀마(40%) 인도네시아(32%) 캄보디아(36%) 태국(36%) 등 6개국에 달한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9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관세 정책을 비판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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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관세율이 1%포인트(p) 인상된 말레이시아는 회의장에서 강한 불만을 쏟아냈다.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는 기조연설에서 “무역이 무기화하고 있다”며 “한때 성장을 견인하던 도구(관세)가 이제는 압박과 고립, 억제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관세는 일시적인 폭풍이 아니다”라며, 아세안의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아세안의 거센 반발 속 미국은 정면 돌파에 나선다. 10, 11일에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이 아세안 외교 안보 수장들과 양자·다자 회담을 연다. 미 국무부 고위 관리는 블룸버그통신에 “루비오 장관은 회의에서 관세 정책에 대한 백악관의 메시지를 되풀이하면서, 아세안과의 무역 관계에서 ‘균형 재조정’ 필요성을 강조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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