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대신 추첨·상담 방식" 구두 행정 지도
선행학습 광고만 금지한 법···'4세 고시' 못 막아
교육청이 시험 여부 감독하는 법안 등 발의돼
3월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한 어린이가 학원으로 등원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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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영유아 사교육이 기억력을 담당하는 해마, 불안을 담당하는 편도체 등의 뇌손상을 일으킨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나온 가운데, 서울시교육청이 일명 '4세 고시'라 불리는 레벨 테스트를 실시한 영어 학원 11곳을 적발했다.
레벨 테스트는 영유아 조기 사교육을 과열시키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없는 실정이다. 이번에 적발된 곳 역시 교육청이 구두로 행정 지도를 전하는 데 그쳐, 관련 법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또 학원... "영유아 인지 발달 왜곡"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5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서울 반일제(하루 4시간 이상 수업을 하는 학원) 영어학원 전체인 219곳 및 부당 광고가 의심되는 학원 29곳 등 총 248개 학원을 특별점검한 결과를 3일 발표했다.
이번 점검 대상 학원 중 11곳이 교습생을 선발하는 절차로 '4세 고시'라고 불리는 사전 레벨 테스트를 실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일부 유명 학원에서 진행하는 이 테스트는 통상 4~7세 아동을 대상으로 영어 말하기·작문 시험이나 지능(IQ) 검사와 비슷한 영재성 검사를 진행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 테스트 통과를 돕는 또 다른 영유아 대상 학원까지 생겨나는 실정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4세 고시가 영유아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발표한 전국 영유아 기관 원장·교사 1,733명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부분인 91.7%가 "영유아 레벨 테스트는 인권 침해"라고 답했다. 신소영 사걱세 공동대표는 "학원 레벨 테스트는 인지 발달 수준을 넘어선 출제로, 과도한 조기 사교육 촉발은 물론 영유아의 인지·정서 발달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4세 고시' 막을 현행법 없어... '영어유치원 방지법' 발의돼
지난달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이 기자회견을 열고 영유아 대상 영어학원 조기교육 규제를 촉구하고 있다. 사걱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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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로선 4세 고시를 제재할 방법이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그나마 학원 선행학습은 광고나 선전을 금지하는 규정(공교육정상화법 제8조의4)이라도 있지만, 레벨 테스트에 대해선 아예 언급된 내용이 없어 제재·조치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적발 11곳은) 점검을 나간 인원이 학원에 구두로 '교습생 선발 방식을 테스트가 아닌 추첨·상담 등으로 변경하라'고 행정지도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5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학원 설립·운영의 등록사항에 현행 △인적사항 △교습 과정 △강사 명단 △교습비 외에 모집 시험 여부도 추가로 기재해 교육감의 지도·감독을 받게 하는 학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미등록 학원에 대한 관리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같은 달 23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은 아예 영유아 교습 시간을 제한하는 '영유아 영어유치원 금지법'(학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6개월 미만 유아는 교과 과정 연계 또는 영어 교습을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미취학 아동은 하루 40분으로 교습 시간을 제한, 이를 어길 시 학원 등록 말소 등 행정 처분을 받도록 하는 내용이다.
사걱세 측은 "학습 사교육의 적정 시작 시기를 학령기라 불리는 '취학 이후'로 법률에 명시하고, 발달 특성에 적합한 교습 시간 기준을 상세히 정해 법제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최은서 기자 sil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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