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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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사’ 포스터에 등장한 우리의 주인공은 렌. 초등학생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엄마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데 이 식탁부터가 예사롭지 않아요. 어느 가족이 이렇게 뾰족한 삼각형 식탁에 전투하듯 둘러앉아 밥을 먹겠어요. 하지만 렌이 아빠에게 던진 질문을 듣는 순간, 관객은 삼각형 식탁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아빠, 진짜 혼자 먹고 살 수 있어?” 그렇습니다. 아빠는 집을 나가려합니다. 엄마와 이혼하겠다는 거죠. 아빠는 “이제 가볼게, 잘 지내”라며 떠나고, 렌은 아빠의 이삿짐차를 따라갑니다. 아빠의 새 집 장롱에 들어가선 “여기랑 내 방 벽장이랑 연결되는 거야”라며 짐짓 명랑한 척 하죠. 다시 집에 가니 엄마는 “오늘은 우리 둘이 새출발하는 날”이라며 “둘을 위한 계약서를 쓰자”고 합니다. ‘엄마가 일하러 갈 땐 불평하지 않기’ ‘아침 준비는 엄마가 하기, 저녁은 교대로 하기’ 등등. 달라질 일상에 대한 약속을 적어놨습니다. ‘엄마 허락없이 아빠한테 가지 않기’도 있네요. 의연해보이는 렌. 과연 엄마 아빠의 새로운 출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에이유앤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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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렌의 성장기이자 자기발견기이며, 관객에겐 화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여행기입니다. 등장인물이 이사를 가는 표면적인 이사, 주인공이 삶의 한 시절에서 다른 시절로 넘어가는 이사가 다 들어있어요. 렌은 아빠에게 전화해 항의합니다. “나는 둘이 싸워도 참았는데 왜 둘이는 못 참아!” 듣고보니 참 맞는 말이죠. 아빠는 “미안해, 아빠 회의 중이야”라며 거짓말로 피합니다.
엄마 아빠는 왜 멀어졌을까요. 중간에 이유가 언급되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쏘아붙이거든요. “당신은 내가 임신해서 입덧이 심했을 때 신경 안 쓰고 TV만 봤어”라고요. “내가 직장을 나가지 않을 땐 ‘경제적 협력도 안 하는 주제에 잔소리 하지마’라더니 직장 나가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변했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다른 직장 동료에게 하는 말. “결혼이란 말야, 센 사람 마음대로 하는 생존 게임이야.” 렌의 엄마와 아빠는 이젠 둘이 하던 생존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거죠. 렌은 화가 나서 “왜 나를 낳았어!”라고 힐난합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그 말. 왜 나를 낳았어.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해. 이렇게 아프게 해.
아빠는 아빠대로 렌에게 해명을 해요. “줄넘기 해봤니. 아빠가 가진 건 짧은 줄뿐이었어. 짧은 줄로 셋이 폴짝폴짝 뛰었는데, 아빠가 지쳤어. 줄을 돌리기가 힘들었어. 셋이니까 혼자만 쉴 수도 없고. 처음엔 살짝 꿈만 꿨을 뿐인데, 나중엔 참을 수 없게 됐어. 혼자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어.” 렌의 응수는 이번에도 역시나 맞는 말. “연결하면 되잖아. 다른 사람 줄하고 묶어서 하면 되지.” 하지만 어쩌겠어요. 마음은 무작정 연결한다고, 잡아서 늘린다고, 억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에이유앤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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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렌은 말합니다. “이제 상관없어, 나 빨리 어른이 될게. 빨리 어른이 될거야.” 이 결심을 하고 영화는 종반부에 접어드는데, 저는 이 영화에서 두 번의 엔딩을 느꼈어요. 특히 두 번째 엔딩, 그러니까 자막이 올라갈 때 후일담처럼 보여지는 엔딩은 움직이는 엽서같더군요. 엽서가 펼쳐지기 전, 첫 번째 엔딩에서 울려펴지는 렌의 한 마디는 이 시절을 건너가기 위한 주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대사를 렌이 여러 번 되풀이하거든요. 무엇에 대한 축하일까, 그 답은 여러분에게 달렸겠네요. 이제부터 진짜 나를 만나게 될 거라서 축하해. 세상은 혼자라는 걸 알게 돼 축하해. 어린 시절을 보내주게 돼 축하해. 여러 가지로 가능하겠지요.
렌은 축하한다면서 누군가를 꼭 끌어안는데, “날 혼자 두지 마”라고 외치는 상상 속의 자신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껴안고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이 ‘이사’에 대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건 왜 부모가 나를 낳았을까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태어나버린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렌도 엄마 아빠에게 다시는 “왜 나를 낳았어”라고 묻지 않겠지요. 제가 두 번째 엔딩 같다고 말씀드린 붙임 장면,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컷. 아마 여러분도 맘에 드실 거에요. 고레에다 감독이, 하마구치 감독이, 그렇게 찬사를 보낸 이유를 그 한 컷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 마지막 컷을 마음에 고이 접어뒀다 가끔 다시 꺼내 보려합니다. ‘이사’에 이어 곧 개봉할 ‘여름정원’은 다음 레터로 보내드릴게요. 소마이 감독과 이렇게 한 번 친해보시죠.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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