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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그 영화 어때] 왜 날 낳았어, 따지고 싶은 때가 있었나요, 영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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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44번째 레터는 개봉 열흘 만에 2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이사’입니다. 꼬마의 양볼을 장난스레 잡아당긴 빨간 포스터, 눈에 확 들어오지 않나요. 일본 소마이 신지(1948~2001) 감독의 1993년 작품이고, 그해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습니다. 국내에선 이번이 첫 개봉이에요. ‘이사’ 이듬해에 개봉한 ‘여름정원’도 곧 개봉합니다. 소마이 감독은 일본 감독들의 존경을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영화 ‘이사’를 보고 고레에다 히로카즈“소마이 신지가 그 세대에서 최고의 감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했고, 하마구치 류스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경이로운 작품”이라고 평했다고 하네요. 어떤 영화기에? 궁금하시죠. 여러분의 감상을 해치지 않을 선에서, 살짝 말씀드려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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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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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사’ 포스터에 등장한 우리의 주인공은 렌. 초등학생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엄마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는데 이 식탁부터가 예사롭지 않아요. 어느 가족이 이렇게 뾰족한 삼각형 식탁에 전투하듯 둘러앉아 밥을 먹겠어요. 하지만 렌이 아빠에게 던진 질문을 듣는 순간, 관객은 삼각형 식탁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아빠, 진짜 혼자 먹고 살 수 있어?” 그렇습니다. 아빠는 집을 나가려합니다. 엄마와 이혼하겠다는 거죠. 아빠는 “이제 가볼게, 잘 지내”라며 떠나고, 렌은 아빠의 이삿짐차를 따라갑니다. 아빠의 새 집 장롱에 들어가선 “여기랑 내 방 벽장이랑 연결되는 거야”라며 짐짓 명랑한 척 하죠. 다시 집에 가니 엄마는 “오늘은 우리 둘이 새출발하는 날”이라며 “둘을 위한 계약서를 쓰자”고 합니다. ‘엄마가 일하러 갈 땐 불평하지 않기’ ‘아침 준비는 엄마가 하기, 저녁은 교대로 하기’ 등등. 달라질 일상에 대한 약속을 적어놨습니다. ‘엄마 허락없이 아빠한테 가지 않기’도 있네요. 의연해보이는 렌. 과연 엄마 아빠의 새로운 출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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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에이유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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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는 렌의 성장기이자 자기발견기이며, 관객에겐 화해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는 시간여행기입니다. 등장인물이 이사를 가는 표면적인 이사, 주인공이 삶의 한 시절에서 다른 시절로 넘어가는 이사가 다 들어있어요. 렌은 아빠에게 전화해 항의합니다. “나는 둘이 싸워도 참았는데 왜 둘이는 못 참아!” 듣고보니 참 맞는 말이죠. 아빠는 “미안해, 아빠 회의 중이야”라며 거짓말로 피합니다.

    엄마 아빠는 왜 멀어졌을까요. 중간에 이유가 언급되는데, 엄마가 아빠에게 쏘아붙이거든요. “당신은 내가 임신해서 입덧이 심했을 때 신경 안 쓰고 TV만 봤어”라고요. “내가 직장을 나가지 않을 땐 ‘경제적 협력도 안 하는 주제에 잔소리 하지마’라더니 직장 나가 돈을 많이 벌게 되니까 변했어”라고도 합니다. 그러면서 엄마가 다른 직장 동료에게 하는 말. “결혼이란 말야, 센 사람 마음대로 하는 생존 게임이야.” 렌의 엄마와 아빠는 이젠 둘이 하던 생존 게임에서 벗어나고 싶어진 거죠. 렌은 화가 나서 “왜 나를 낳았어!”라고 힐난합니다.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그 말. 왜 나를 낳았어. 낳아서 이렇게 힘들게 해. 이렇게 아프게 해.

    아빠는 아빠대로 렌에게 해명을 해요. “줄넘기 해봤니. 아빠가 가진 건 짧은 줄뿐이었어. 짧은 줄로 셋이 폴짝폴짝 뛰었는데, 아빠가 지쳤어. 줄을 돌리기가 힘들었어. 셋이니까 혼자만 쉴 수도 없고. 처음엔 살짝 꿈만 꿨을 뿐인데, 나중엔 참을 수 없게 됐어. 혼자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어.” 렌의 응수는 이번에도 역시나 맞는 말. “연결하면 되잖아. 다른 사람 줄하고 묶어서 하면 되지.” 하지만 어쩌겠어요. 마음은 무작정 연결한다고, 잡아서 늘린다고, 억지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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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마이 신지 감독의 영화 '이사'/에이유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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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렌은 말합니다. “이제 상관없어, 나 빨리 어른이 될게. 빨리 어른이 될거야.” 이 결심을 하고 영화는 종반부에 접어드는데, 저는 이 영화에서 두 번의 엔딩을 느꼈어요. 특히 두 번째 엔딩, 그러니까 자막이 올라갈 때 후일담처럼 보여지는 엔딩은 움직이는 엽서같더군요. 엽서가 펼쳐지기 전, 첫 번째 엔딩에서 울려펴지는 렌의 한 마디는 이 시절을 건너가기 위한 주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축하합니다!” 이 대사를 렌이 여러 번 되풀이하거든요. 무엇에 대한 축하일까, 그 답은 여러분에게 달렸겠네요. 이제부터 진짜 나를 만나게 될 거라서 축하해. 세상은 혼자라는 걸 알게 돼 축하해. 어린 시절을 보내주게 돼 축하해. 여러 가지로 가능하겠지요.

    렌은 축하한다면서 누군가를 꼭 끌어안는데, “날 혼자 두지 마”라고 외치는 상상 속의 자신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껴안고 자신을 받아들입니다. 소마이 신지 감독이 ‘이사’에 대해 남긴 말이 있습니다.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건 왜 부모가 나를 낳았을까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좋든 싫든 태어나버린 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렌도 엄마 아빠에게 다시는 “왜 나를 낳았어”라고 묻지 않겠지요. 제가 두 번째 엔딩 같다고 말씀드린 붙임 장면,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컷. 아마 여러분도 맘에 드실 거에요. 고레에다 감독이, 하마구치 감독이, 그렇게 찬사를 보낸 이유를 그 한 컷만으로도 알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 마지막 컷을 마음에 고이 접어뒀다 가끔 다시 꺼내 보려합니다. ‘이사’에 이어 곧 개봉할 ‘여름정원’은 다음 레터로 보내드릴게요. 소마이 감독과 이렇게 한 번 친해보시죠.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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