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AI 모델 '딥시크 쇼크'는 삼성전자에 위기일까 기회일까. 최근 반도체 업계에 돌고 있는 화두다. 삼성이 정성을 쏟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쓸모없어졌다는 주장과 값싼 AI 가속기 칩이 인기를 끌더라도 HBM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충돌한다. 삼성전자는 비관론과 긍정론 사이에서 어떤 행보를 내디뎌야 할까. '삼성전자의 현재와 미래' 마지막 편이다.
딥시크 쇼크가 장기적으론 삼성전자에 호재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 사장.[서잔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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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어떻게 흘러갈까. 이를 논하려면 인공지능(AI)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AI 개발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이것이 AI 산업을 넘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어떤 바람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AI 개발 업계의 미덕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었다. '더 많은 데이터, 더 뛰어난 AI 가속기를 투입할수록 성능 좋은 AI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은 AI 개발 산업을 견인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AI 개발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기업이 나타났다. 중국 기업 '딥시크(DeepSe ek)'다. 이 업체가 지난해 자체 개발한 대규모 언어모델(LLM) '딥시크-V3'는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 칩 'H800'을 활용하고도 빼어난 성능을 뽐냈다. 딥시크가 공개한 개발비는 총 557만6000달러(약 80억5899만원). AI 개발에만 수천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진 메타와 오픈AI와 비교하면 무척 저렴한 값을 들인 셈이다.
한발 더 나아가 딥시크는 올해 1월 20일 딥시크-V3을 개량한 '딥시크-R1' 시리즈를 출시했는데, 이 역시 뛰어난 가성비를 선보였다. 1월 30일 딥시크가 공개한 기술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딥시크-R1은 500개 수학 문제로 성능을 평가하는 'MATH-500'에서 정확도 97.3%를 기록했다. 오픈AI의 '챗GPT o1(96.3%)'보다 높은 점수다.
코딩 능력을 평가하는 벤치마크에서도 정확도 65.9%로 챗GPT o1(63.4%)보다 우위를 차지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AI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딥시크가 몸소 증명한 셈이다.
다만, 딥시크를 둘러싼 논란을 짚어볼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 딥시크가 공개한 개발비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는 딥시크가 그보다 많은 비용을 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반도체 전문매체 세미애널리시스는 1월 31일 보도에서 "딥시크가 공개한 개발비엔 AI의 사전학습 비용만 포함돼 있다"면서 "AI 가속기 칩 구매비와 서버 유지비, 인건비 등을 합치면 총비용은 50배 이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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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의 성능이 "과대평가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딥시크 AI 모델에 흠결이 적지 않다는 건데, 최근 일고 있는 '보안성 문제'가 대표적이다. 최근 딥시크는 '이용자의 정보를 과하게 수집·탈취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세계 각국의 정부기관과 기업에서 퇴짜를 맞고 있다.
국내에서도 딥시크를 속속 차단하고 있다. 지난 6일 외교부·경찰청·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부처는 외부 접속이 가능한 전자기기의 딥시크 앱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대기업도 일찌감치 사내 기기로 딥시크를 사용하는 걸 중단하는 사내 공지문을 돌렸다.
하지만 두 문제를 이유로 딥시크의 파급력을 축소해선 안 된다. 특히 보안성 문제는 딥시크가 답을 내놓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딥시크의 파급력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치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삼성전자가 딥시크 이슈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비관론이다.
■이슈❶ 딥시크 쇼크 =한편에선 '딥시크 쇼크'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최첨단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둔화할 수 있어서다.
HBM이 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HBM은 D램 같은 레거시(범용) 메모리보다 더 높은 대역폭을 제공하는 차세대 제품이다. AI 학습에 사용하는 AI 가속기 칩의 필수재로 꼽힌다.
대표적인 고사양 AI 가속기 칩은 엔비디아가 생산 중인 H100인데, 여기엔 최신 모델인 5세대 HBM(HBM 3E)이 쓰인다. H100은 1대당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도 2023년에만 150만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만큼 5세대 HBM 수요도 급증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고사양 AI 가속기 칩 없이도 AI 훈련이 가능하다'는 딥시크의 발표는 5세대 HBM 생산·개발에 열을 올리던 반도체 기업들엔 충격적인 소식임에 틀림없다. 현재 엔비디아에 5세대 HBM을 독점 납품해 'HBM 선두주자'로 평가받는 SK하이닉스의 주가가 흔들린 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HBM 납품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사진은 젠슨 황 엔비디아 대표.[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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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시크-R1 공개 직후인 1월 31일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9만9200원으로 전일 대비 10% 가까이 하락했다. 'HBM 큰손'인 엔비디아도 직격타를 맞았다. 1월 27일(현지시간) 주가가 142.62달러(27일)에서 118.42달러로 16.97% 하락한 이후로 현재 123.83달러(2월 5일)에 머무르며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도 예외일 순 없다. 현재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5세대 HBM 납품을 준비 중인데, 품질 인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엔비디아가 HBM 최대 납품처인 만큼 인증 통과를 서둘러야 하지만 한편으론 5세대 HBM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딥시크 쇼크로 인해 삼성전자의 입장이 여러모로 난처해진 셈이다.
■ 이슈❷ 딥시크 호재 = 하지만 반론도 있다. 딥시크 쇼크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삼성전자에 기회를 줄 것이란 관점이다. 딥시크의 '가성비 AI'에 주목한 기업들이 뒤따라 AI 개발에 뛰어들기 시작하면 AI 개발 산업 규모가 커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 삼성전자의 HBM 사업도 수혜를 입을 수 있다.
추세만 보면 최신 HBM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데, 어떻게 HBM 사업이 탄력을 받는다는 걸까.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은 "AI 개발에 저사양 AI 가속기 칩을 쓴다고 해서 HBM을 아예 쓰지 않는 건 아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딥시크가 사용한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 칩 H800엔 이전 모델인 3세대 HBM(HBM2E)과 4세대 HB M(HBM3)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런 흐름에 발맞춰 삼성전자가 HBM 고객사를 늘리지 못하면 모처럼 찾아올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 HBM 개발업체들이 공격적으로 HBM 생산 투자를 늘려 궁극적으로 AI 가속기 칩을 국산화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면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납품 말고도 신규 고객사 확보에도 신경을 써야 글로벌 HBM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와 3자 회동을 했다.[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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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도 이를 의식했는지 발걸음이 바빠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4일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한국에서 '3자 회동' 한 건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손 회장은 미팅 이후 취재진에게 "'스타게이트'를 두고 삼성전자와의 잠재적 협력 여부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스타게이트는 소프트뱅크그룹과 오픈AI,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이 추진 중인 프로젝트로,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향후 4년간 5000억 달러(약 720조원)를 투입할 예정이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AI 프로젝트'라고 불리고 있다. 손 회장은 "스타게이트 참여를 주제로 좋은 논의를 했다"고 말했지만 삼성전자는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딥시크 나비효과는 삼성전자에 어떤 결과를 안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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