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한' 환율②] 8월 달러수지 넉 달 만에 적자
2분기 기관 해외투자액·증가폭 ‘역대 최대’
수천억달러 규모 대미투자에 기업 ‘달러 쟁이기’
전문가 “달러 수급 불균형 지속될 가능성 높아”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서 뉴욕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국내 금융시장에서 달러는 넉 달 만에 다시 ‘유출’로 전환됐다. 여기에 한미 관세협상에서 국내 기업들이 대규모 대미투자를 약속한 점도 달러 수요를 부추겨 높은 환율 수준을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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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월말, 정규장 종가 기준
달러 순유입(+), 달러 순유출(-)
달러수지: 외국인 국내증시 순매수-내국인 미국증시 순매수
출처: 서울외국환중개, 예탁결제원내외국인 모두 ‘美주식 사자’…8월 달러수요 늘어
3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외국인의 국내증시 순매수(-10억 7000만달러)에서 거주자의 해외주식 순매수(6억 4000만달러)를 뺀 ‘달러수지’는 17억 1000만달러 순유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달러 수요가 원화 수요보다 늘었다는 의미로, 지난 4월(-108억 3000만달러) 이후 넉 달 만에 달러 유출로 전환된 것이다.
달러수지는 한 나라가 달러로 벌어들이는 돈과 달러로 지출하는 돈의 차이를 의미한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9개월 연속 달러수지는 마이너스(-)였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되던 5월부터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달러가 다시 유입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국내증시에서 외국인의 매수 심리 과열이 조기에 진정됐고, 미국 증시 회복에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매수세는 커지면서 다시 달러 유출이 확대된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도 영향을 줬다. 신정부 효과가 소멸되자 국내 주식시장의 상승세가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 금액이 급증했고,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속도가 느려지면서 외국인의 국내채권 매수세가 약화됐다.
8월에 달러가 유출되자 환율은 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정규장 종가 기준으로 환율은 4월 1421.0원에서 5월(1380.1원), 6월(1350.0원), 7월(1387.0원)까지 1300원 중반대로 하락하는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8월에는 다시 1390.1원으로 올라서며 1400원에서 가까워졌다.
개인뿐만 아니라 기관의 ‘달러 사자’ 움직임도 거세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주요 기관투자가의 외화증권투자 잔액은 시가 기준 4655억 3000만달러(약 646조 100억원)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1분기에 비해 349억 6000만달러(8.1%)늘어나, 역대 최대 증가 폭이다.
기업, 대미 직접투자에 ‘달러 쌓아두자’
관세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한 대미 직접투자도 달러 수요를 유발하는 잠재적 요인이다. 정부는 앞서 한미 관세협상에서 1500억달러 규모 대미 조선 투자·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를 포함해 총 3500억달러 투자 패키지를 미국 측에 약속한 대가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췄다.
기업 미국 현지투자 계획은 막대한 달러 실수요를 촉발하고, 국내 외환시장 달러 유입 축소를 유발하고 있다. 실제로 한 국내 중공업체는 70% 정도였던 환헤지 비중을 최근에는 50% 이하로 낮췄다. 미국 현지 재투자를 위해 달러를 쟁여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양호한 수출 실적과 별개로 현재 다수의 국내 기업은 외화를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은행에 예치하는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 이밖에 연기금의 해외투자와 환헤지 청산으로 인한 달러 수요도 많다.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며 미소 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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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쏠림’ 장기화 우려
최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미국 증시 매수로 인한 환율 상방 압력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 총재는 “최근 몇 년간은 우리 국민들의 대외 투자가 굉장히 증가됐고, 해외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환율 관리가 그렇게 쉬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달러 수급 불균형 상태가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9월에도 무역협상 불확실성 완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재개 수혜 등을 감안하면 미국 주식시장 선호 현상이 지속될 수 있다.
이민혁 KB국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수급 불균형의 한 축인 달러 수요 증가의 근본적 원인은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는 데에 있다”며 “경기 부진으로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은 계속 유출되고 있고, 내국인 자금은 더 높은 수익률을 쫓아 해외로 빠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무역수지가 그나마 달러 수요를 선방하고 있지만, 관세 영향이 가시화 된다면 무역 흑자가 계속해서 이어질지 불확실하다”고 우려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수출이 좋더라도 국내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은 재투자를 해야하기 때문에 굳이 한국으로 자금을 들고 들어올 유인이 없어진다”며 “대미투자가 끝나기 전까지는 환율이 하락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4년 초에도 외국인의 주식 자금 유입만으로는 환율이 내리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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