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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트럼프는 관세로 우방 잃고… 시진핑은 그 틈에 反美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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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How]

    美 우선주의 역풍

    중국, 각국과 밀착

    글로벌 리더 야심

    조선일보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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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는 미국의 적(敵)들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행사에 대해 CNN은 이같이 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며 전 세계를 압박하고 있지만, 오히려 미국 주도 국제 질서에 심각한 균열을 만들었고 그 빈틈을 메우며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려는 중국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승절 열병식은 단순한 군사 퍼레이드가 아니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글로벌 질서를 어떻게 재편하려 하는지 보여주는 무대였다. 트럼프가 “나와 모두 친하다”고 강조한 시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6년 만에 처음으로 나란히 선 장면은 글로벌 권력의 흐름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는 3일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전승절 행사와 관련, “아름다운 행사였고 매우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나는 그들(북·중·러 정상) 모두와 관계가 매우 좋다. 얼마나 좋은지 앞으로 1~2주 사이에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태연한 모습이었지만 트럼프는 전날에는 소셜미디어에 “미국을 상대로 음모를 꾸미고 있는 푸틴과 김정은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 장관은 3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군을 재건하고 억지력을 확립하라고 명령했다”고 했고, 미 재무부는 중국 화학 업체를 마약 원료 유통 혐의로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고 발표했다. 중국 견제 움직임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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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왼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오른쪽) 등 외국 정상들이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참관을 하러 톈안먼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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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敵을 다시 위대하게 만든' 트럼프… 만나자는 정상들 줄 선 시진핑

    시진핑은 열병식 다음 날인 4일에도 라오스·베트남·쿠바·짐바브웨·콩고·슬로바키아·세르비아 등의 정상들과 줄줄이 양자 회담을 하면서 미국에 대항하는 진영 구축에 힘썼다. 지난달 31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 회의부터 꼬박 5일 동안 ‘만방래조(萬邦來朝·세계 각국이 조공을 바치러 중국에 온다)’를 재현한 것이다. 시진핑이 정상회담에서 “현재 국제·지역적 형세에 복잡하고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방주의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역류에 직면해 단결·자강해야 희망이 있다” “간섭과 봉쇄에 맞서는 정의로운 투쟁을 중국은 계속 굳건히 지지하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 ‘앞으로는 워싱턴보다 베이징 편에 서는 것이 낫다’는 메시지를 각국에 보낸 것이다.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입장에서는 공들였던 푸틴과 김정은이 열병식에 참석해서 실망감이 컸을 테고, 시진핑이 정면으로 미국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큰 타격”이라고 했다. 고유환 동국대 명예교수는 “중국은 그동안 신냉전 구도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이었는데,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에 의해 등 떠밀려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는 서사를 쓰게 됐다”고 했다.

    관세 폭탄을 비롯해 동맹을 공격하고 해외 원조 프로그램을 철폐하는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정책들은 기존 동맹과 우방국의 시선을 중국 쪽으로 향하게 만들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브라질의 정치학자 후세인 칼라우트는 미 언론에 “트럼프의 접근은 미국의 소프트파워와 글로벌 정당성을 침식시키면서 경쟁자들을 강화했다”고 진단했다. 재집권한 트럼프가 중국·러시아·북한 등 미국의 적들을 서로 갈라 놓으려 했지만, 과도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오히려 이들을 뭉치게 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는 세계를 경제적 강압의 불확실한 시대로 몰아넣었다”며 “많은 국가가 중국 편에 서는 장점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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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부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9월 1일 중국 톈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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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미국 언론들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시 주석의 ‘해빙 모드’를 이번 전승절의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꼽는다. 트럼프가 인도산 수입품에 50% 관세 폭탄을 부과하면서 공화·민주당의 역대 미 대통령들이 지난 30년간 인도와 중국을 떼어 놓으려 공들였던 전략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반(反)미·비(非)미 텐트’가 확장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조너선 친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을 찾은 정상들의 행렬 자체가 시진핑 외교의 성과”라며 “시진핑은 미국과 동맹에 포위당하기보다 각국 정상들에게 에워싸이고 있다”고 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시진핑은 미국과 ‘큰 게임’을 벌이며 세계 최강국 도약을 꿈꾸면서 주요 강대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전략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승절 행사에 앞서 열린 SCO 정상 회의에는 최근까지 미국과 가까웠던 베트남, 이집트, 심지어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까지 참석했다.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들이 변덕스러운 관세 정책을 비롯한 트럼프의 일방주의에 불만을 쌓아가는 사이에 중국이 대체 리더로 빠르게 부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중국을 상대로 대규모 무역 공세를 벌인 트럼프를 상대로 시진핑이 미국의 기술·군사 산업에 필수적인 희토류 수출 통제를 ‘목줄’ 삼아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중국이 미국의 힘에 도전할 준비가 돼 있다는 국제적 인식을 강화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오는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는 재집권한 트럼프와 시진핑이 다시 마주할 가능성이 높은 첫 무대다. 미국 우선주의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트럼프와, 이를 틈타 글로벌 리더십을 과시하는 시진핑 간 패권 경쟁이 한층 주목받는 가운데, 동아시아 및 글로벌 질서 재편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는 “이번 열병식에서 북·중·러의 ‘반미 모략’이 드러나면서 미국 동맹들은 좋든 싫든 트럼프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를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시진핑이 두 깡패 국가와 손잡는 모습은 열병식에 모인 국가들의 거부감과 경계심을 키웠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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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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