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군 전진기지 되는 수비크
지난 2일(현지시각) 필리핀 해군 헬리콥터 한 대가 남중국해 분쟁 수역에서 필리핀, 호주, 캐나다 해군과 해상 합동 훈련 중 함상 위에서 연료를 보급받고 있다. /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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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아시아 최대 미군 기지가 있었던 필리핀 수비크(Subic)만 지역에 미국이 세계 최대 규모의 무기 제조 거점을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필리핀에 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는 미국이, 이를 지원할 대규모 군사 시설을 조성하려는 것으로, 2022년 필리핀에 친미 정권이 출범하면서 양국 안보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은 8일 “수비크만 탄약 허브 계획은 패권적 움직임을 강화하는 중국을 쓰러뜨리고 전선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 7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미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탄약 허브 계획을 논의했다. 마르코스는 “이 시설은 필리핀 ‘자주 국방’의 일환이자 서필리핀해(남중국해) 상황에 대한 대응”이라며 “우리 영토의 방어와 주권 행사가 본질적 문제”라고 했다. 트럼프는 “몇 달 안에 (필리핀은) 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탄약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며 “빠른 미사일, 느린 미사일, 정확한 미사일, 정확도가 약간 떨어지는 미사일이 모두 포함된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90㎞가량 떨어져 있는 수비크만은 중국 선전, 대만 타이베이와는 1100㎞ 거리다. 중국 상하이·베이징과는 각각 1800㎞, 2800㎞가량 떨어져 있다. 중국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사거리 내에 대규모 핵심 군사 거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필리핀이 2023년 미국이 필리핀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지를 기존 5곳에서 9곳으로 늘리고, 지난해부터 미군의 지대지 중거리 미사일 시스템 ‘타이폰’과 지대함 미사일 ‘네메시스’ 배치를 허용한 상황에서, 대규모 탄약 시설이 구축될 경우 유사시 미국과 필리핀의 신속한 합동 대응이 가능해진다. 그간의 ‘순회 훈련’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대중(對中) 요새가 필리핀에 들어서는 셈이다.
필리핀은 남중국해 영유권을 둘러싼 중국과의 긴장 관계에서 강한 억지력을 보유하게 된다. 특히 2022년 출범한 마르코스 주니어 정권은 미국과 밀착하며 대중 강경 노선을 걷고 있어 역내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2016년 출범한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부는 친중 노선을 채택, 중국과 갈등 완화를 시도했지만, 분쟁은 지속돼왔다. 필리핀은 2012년 ‘남중국해’ 명칭을 ‘서(西)필리핀해’라고 자체 변경했다.
수비크만엔 과거 미 해군이 아시아 최대 규모 기지를 운용했다. 냉전 종식 이후 1992년 필리핀 의회 결정으로 미군이 철수했고, 이후 ‘경제 특구’로 지정돼 현재는 HD현대중공업 등이 조선소를 운영하고 있다. 미군 철수 후 중국은 ‘힘의 공백’을 틈타 남중국해 패권을 엿보고 있다.
미 해군 연구소는 “냉전 이후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방산 투자가 될 것”이라고 했고, 필리핀 언론 ‘필리핀 스타’는 “필리핀 안보의 중대 전환점”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 3월 미국과 필리핀은 수비크에 무기 허브를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미 하원은 지난 6월 “인도·태평양 지역에 ‘전진 배치된 탄약 제조 시설’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2026년 수비크 기지 건설 타당성 평가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비크 탄약 시설에선 니트로셀룰로오스, 니트로글리세린 등 폭발물과 탄약 생산 필수 재료를 생산하게 된다.
필리핀 야권과 시민단체는 “수비크 기지 건설은 미국의 침략 야욕에 휘둘리는 꼭두각시짓”이라며 “필리핀이 중국의 총알받이가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두테르테의 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은 “필리핀은 자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며 외국이 강요하는 의제는 거부해야 한다”며 “단일 외국 세력(미국)과 지나치게 밀착하면 주권을 훼손하게 된다”고 했다. 필리핀국제인권연대(ICHRP)는 “살상 무기를 제조하는 미국 군산 복합체에 저항해야 한다”며 “이 계획은 필리핀이 아니라 미국의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반발도 예상된다. 최근 중국은 필리핀 내 미군 훈련에 대해 “미국이 남중국해의 긴장을 고조시켜선 안 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지난달 마르코스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필리핀도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발언하자 중국이 “불장난을 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엔 수비크만에서 중국인 6명이 간첩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요미우리는 “시설 건설이 본격화하면 긴장이 더욱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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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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