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18세 소녀에서 정당방위 쟁취해낸 여성운동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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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린 여성에서 여성운동가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최말자씨가 2020년 5월 6일 재심 청구서를 들고 있는 모습. 2021년 11월 15일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모습. 2025년 7월 23일 첫 공판에서 무죄를 구형받고 "이겼습니다"를 외치는 모습. 2026년 9월 10일 무죄를 선고받고 꽃다발을 들고 환호하는 모습. |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최말자(78)씨는 1964년 경남 김해에서 한 남성의 성폭력에 저항하던 중 혀를 깨물었다. 최씨는 이 사건으로 다음 해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씨가 18세였을 때 일이다. 정당방위였지만 주홍 글씨처럼 따라붙었다.
이 사건은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불렸고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정당방위를 사법 시스템이 무시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18세 최씨의 인생에 주홍 글씨가 새겨진 지 56년 뒤 그는 만학도의 길을 걷다 대학 동료의 도움으로 한국여성의전화 문을 두드렸다.
"'바위에 계란 치기'라도 묻고 갈 수 없었다"고 최씨는 그때를 회상했다.
2020년 5월. 부산지방법원 앞 재심 청구서를 손에 든 최씨는 검은색 옷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죄인이라는 사회적 주홍 글씨를 아직 지우지 못한 최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푹 숙이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56년 만의 미투'라는 제목으로 여성단체와 함께 연 공식 기자회견에서조차 최씨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를 지원하는 여성단체 또한 최씨의 초상권에 대한 주의를 신신당부했다.
당시 언론 인터뷰를 하고 난 뒤 며칠을 앓아누워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청구 6개월 만에 부산지법은 재심을 기각했고 부산고법도 항고를 기각했다.
최씨는 조금 더 용기를 냈다.
2021년 11월 25일 그는 대법원 앞에서 '재심 개시로 정의를 실현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전히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는 있었지만, 더는 결의에 찬 눈빛은 가리지 않았다.
2024년 12월 드디어 대법원은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올해 초 재심이 결정됐다.
재심을 신청하고 5년이 지난 2025년 최씨는 전혀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표정은 당당했고 세상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 7월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첫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은 무죄를 구형하며 뒤늦은 사과를 했다.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최씨는 법정 앞에서 큰 소리로 "이겼습니다"를 외쳤다.
9월 10일 선고공판에서 최씨는 18세 소녀로 돌아간 듯 짙은 분홍색 재킷을 입고 참석했다.
그리고 마침내 61년 만에 '무죄'라는 말을 법정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건 발생 61년, 재심 신청 5년이란 긴 시간을 거치며 그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한 18세 소녀에서 정당방위를 쟁취해낸 여성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만 불리던 이번 사건은 성폭력에 대한 첫 정당방위가 재심으로 인정된 첫 재판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최말자씨는 "나는 운이 참 좋아 주변 인연들의 용기와 힘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며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피해자들을 위해 앞장설 수밖에 없었고 그들에게 희망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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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만의 재심 청구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56년 전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가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청구를 위해청사에 들어서고 있다. 최 씨는 자신의 사건 해결을 통해 혼자서 상처를 끌어안고 있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사건 발생 56년째 되는 이날 재심을 청구했다. 2020.5.6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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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길"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56년 전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가해자의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가 6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청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최 씨는 자신의 사건 해결을 통해 혼자서 상처를 끌어안고 있을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용기가 되기를 바라며 사건 발생 56년째 되는 이날 재심을 청구했다. 2020.5.6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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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심 개시 촉구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56년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씨가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재심 개시를 촉구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다. 2021.11.25 saba@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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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의 유죄' 최말자 씨, 법원 재심 촉구 기자회견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1964년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고의에 의한 상해'로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 씨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탄원서를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5.31 ondol@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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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만에 재심서 무죄 구형 받은 최말자씨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손을 치켜 들며 "이겼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2025.7.23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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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만에 인정 받은 무죄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61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78)씨가 2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변호인과 여성단체와 포옹하고 있다. 이날 검찰은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2025.7.23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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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만에 '무죄'라는 말을 듣기 위해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9.10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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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만에 성폭력 정당방위 인정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꽃다발을 받고 엄지를 치켜 세우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9.10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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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말자는 무죄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최말자는 무죄다"를 외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9.10 handbrother@yna.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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