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타임지와 인터뷰
“北, 핵 중단하면 보상… 그 뒤에 군축·비핵화”
지난 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우리는 새로운 세계 질서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속에서 미국과 함께할 것이지만, 중국을 적대시하지 않도록 중국과 관계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한국이 두 진영 간 갈등의 최전선이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정치에 대해선 “내가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이 안정되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북핵에 대해 이 대통령은 “그냥 중단하라고 하면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할 것인가”라며 “현재와 같은 압박을 계속한다면, 북한은 더 많은 핵폭탄을 계속 생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동결→축소→비핵화’ 3단계 비핵화 해법을 밟는 대가로 “부분적인 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위한 협상”을 하자며 “트럼프 미 대통령도 나와 같은 입장일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단기 목표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켜야 한다”며 “그리고 북한의 핵 개발 중단 조치에 대해 일부 보상을 해줄 수 있을 것이며 그 후에 군축 및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핵군축은 통상 상대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뤄진다. 북핵 용인 효과가 있을 수 있어 정부가 사용을 꺼려온 표현으로, 대통령이 이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안미경중 공식 끝… 한국, 美中 갈등서 최전선 설 위험"
18일 공개된 타임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단기, 중기, 장기 목표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북핵 중단→군축→완전한 비핵화’를 각각의 목표로 언급했다. 지난달 21일 보도된 일본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제시한 ‘동결→축소→비핵화’의 3단계 해법과 일견 동일해 보이지만 세부적 의미는 다르다.
북핵의 ‘동결(freeze)’엔 사찰·검증이 동반된다는 함의가 있지만, ‘중단(stop)’이란 표현은 꼭 그렇지는 않다. 핵무기 개발 ‘중단’에 대해 제재 해제 같은 보상을 해주면 북한의 핵보유를 고착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축소(reduction)’는 실질적 ‘감축’만을 뜻하지만, ‘군축(disarmament)’엔 북한의 핵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 대학교 교수와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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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核 중단 보상 후 군축, 비핵화”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어떤 의미를 담아 ‘군축’이라고 말한 것 같지는 않고, (이전과 같이) 감축이란 뜻으로 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임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은 “국제 관계에서는 때때로 옳은 것과 이로운 것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또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종종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할 것인지 아니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것인지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의 선택으로만 생각한다”며 “그러나 나는 중간 지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북한과 협상해서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군축’ 협상을 할 경우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효과가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말로 볼 수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취임 직후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핵보유국)’으로 부른 적 있다. (이재명 정부도) 그와 비슷하게 군축 단계를 거쳐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며 ”북한과 그렇게라도 대화를 하는 것이 현실적 정답이라고 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관계 끊을 수는 없어”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한다는 전통적 방정식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시대는 끝났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의 가치는 한미 동맹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 관계, 경제적 유대, 인적 교류가 있기 때문에, 중국과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는 적절한 수준에서 관계를 관리해야 하며, 서방세계도 이러한 측면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이 역내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 미군 부지 소유권을 거론한 것에 대해서는 “농담이었다고 믿는다”며 “이미 미국은 비용 없이 미군 기지와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땅을 실제로 소유하게 된다면 재산세를 내야 하는데, 그건 면제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타임은 보도했다.
◇“트럼프, 노벨평화상 자격 있어”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겉보기에는 예측 불가능해 보일지 몰라도, 매우 성과 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패자로 비춰지는 결론을 내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러한 점 때문에 내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더 잘 소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미 회담 당시 성사되지 않은 골프 라운딩에 대해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골프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함께 라운드를 돌면 내가 잃을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과 관계가 개선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에 이 대통령은 “이 사안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나온다면 그만큼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정치 분열, 숨 쉬는 것도 비판”
이 대통령은 지난달 광복절 특사에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윤미향 전 의원을 사면해 논란이 된 것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며 “사안에 대해 여론이 엇갈릴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필요한 조치였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은 대립과 분열이 일상화돼 사회 일각에서는 내가 숨 쉬는 것조차 비판받을 지경”이라며 “이런 문화를 바꾸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비롯한 한류 열풍에 대해 고대 중국 문헌에도 한국인이 “가무를 즐긴다”는 표현이 있다며 “한국의 문화적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축적된 것”이라고 말했다.
[주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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