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과 다른 새 정권 첫해
지난주 국내 주요 대기업이 줄줄이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대통령실이 사전에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청년 채용 확대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들은 미래 인재 확보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경영 불확실성이 커 일자리를 늘리는 데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한다. 채용 확대가 지속 가능해지려면 규제 완화와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삼성·SK·현대차·LG·롯데·포스코·한화· HD현대 등 국내 8대 그룹과 함께 청년 채용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김용범 정책실장이 주재한 간담회에는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 실장은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니 함께 고민해보자고 했고, 기업들은 최근 고용 시장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인 16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기업들에 청년 채용 확대를 공개적으로 요청했고, 이틀 후 주요 대기업들이 대규모 신규 채용 계획을 동시에 발표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8개 그룹 외에 다른 대기업들도 채용 확대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지난 19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대통령은 채용 규모를 늘려준 기업에 감사 서한을 전달할 예정”이라며 “8개 기업을 시작으로 30대 기업, 더 나아가 100대 기업까지 청년 채용을 확대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 상황은 어느 때보다 어렵다. 당장 지난 4월부터 미국 관세 부담이 커졌고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석유화학·철강 등 주력 산업이 위태롭다. 석유화학·철강 등 업종은 당장 구조조정을 해야 할 판이라 채용 확대는 언감생심이다. 한경협이 최근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대졸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올 하반기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한 기업 비중은 건설·토목(83.3%), 식료품(70%), 철강·금속(69.2%), 석유화학·제품(68.7%) 순으로 높았다.
게다가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에 이어 정년연장·주4.5일제 등 기업의 채용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는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00여 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 기업의 97.4%는 주 4.5일제·정년연장·노란봉투법 등 노동 관련 제도의 변화가 채용 계획에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부담을 키우는 정책을 지속해서 추진하면서 일자리를 늘리라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삼성·포스코·HD현대 등을 제외한 기업들은 올해 채용 계획만 발표했다. 이번엔 공식 발표 없이 대통령실에만 채용 예정 인원을 조용히 전달한 기업들도 있었다. 통상 새 정부 초기에 10대 그룹은 향후 5년간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내놨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사업 환경이 시시각각 변해서 내년에 몇 명을 뽑을 수 있을지 계획 짜기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경력 채용 중심으로 바뀐 대기업 일자리에 청년 신규 채용 분을 늘리려면 실질적인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청년 고용 시 세제 혜택을 주는 통합고용세액공제 등은 중소·중견기업 위주”라며 “대기업에도 정책적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10대 그룹 관계자는 “신규 채용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기업은 없다”라며 “경기가 좋아지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진다면 기업들이 알아서 사람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hoi.sune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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