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모든 WTO 협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특별하고 차별적인 권리 추구하지 않을 것"
무역협상 '배수진' 치고, 다자주의 수호자 자처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지난 5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걸프협력이사회(GCC) 중국경제포럼 공식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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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이 누리던 특혜를 포기하겠다고 24일 밝혔다. 2019년 7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1기 행정부가 중국에 개도국 지위의 포기를 공식 요구한 지 6년 만이다. 중국의 이번 결정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염두에 둔 중국의 '배수진'이라는 평가와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대항해 국제 사회에 '다자주의 옹호자'라는 중국의 이미지를 굳히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개도국 지위 이용해 더 높은 관세 부과해와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이날 미국에서 열린 세계개발구상(GDI) 고위급 회의에서 "책임 있는 주요 개도국으로서, 중국은 현재 및 미래의 모든 WTO 협상에서 더 이상 새로운 '특별하고 차별적인' 권리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나이지리아 출신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WTO 사무총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년간 노력의 결실로, 이 문제에 대한 중국의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다"고 호응했다.
WTO에서는 '개도국'과 '선진국'을 따로 정의하는 조항은 없다. 다만 회원국이 스스로 이를 판단하도록 하는 '자기선언' 방식을 따른다. 자유무역질서를 옹호하는 WTO에서도 개도국 지위가 인정되면 관세 인하 의무 완화와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허용 등의 150여 개에 달하는 우대 조항을 받을 수 있다. 이런 특혜 덕에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그동안 상대국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었고, 산업 보조금 사용이 더 자유로웠다.
다만 중국은 개도국 지위가 아닌 '특혜'만을 내려놓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리청강 중국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 겸 부부장(장관급)은 공식 브리핑을 통해 "중국이 국내외 양쪽 정세를 모두 염두에 두고 대외적으로 내린 중요한 입장 선언"이라며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이며,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지위와 정체성은 변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혜는 포기하지만, 개도국 지위와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도국)'의 좌장 역할은 계속할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리 부부장은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며 "'일부 국가'가 잇따라 무역·관세전쟁을 일으켜 다자무역체제를 심각하게 타격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우회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은 2019년에 개도국 지위 포기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개도국 지위 유지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중국은 전 세계 상품 수출의 약 13%를 차지하고 첨단 기술 제품 수출은 1995년에서 2016년 사이 3,800%나 증가했는데, 중국은 스스로를 개도국으로 규정하며 WTO에서 혜택을 누려왔다"며 "이는 다른 WTO 회원국들을 희생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개도국 지위를 이용해 불균형 무역을 해왔으며, 이를 통해 WTO 체제를 약화하고 중국 주도의 새로운 무역 질서를 만들어 왔다는것이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2019년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브라질 등은 WTO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당시 미국이 제시한 개도국 지위 포기 조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고소득국가(1인당 국민총소득 1만2,056달러) △세계 무역량 0.5% 이상 국가 중 어느 한 개 이상 포함될 때다. 중국은 OECD 회원국을 제외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중국은 OECD 내 정식 회원국이 아닌 핵심 파트너국 지위다.
"무역협상에서 미국과의 쟁점 해소 위한 것"
중국의 이번 개도국 특혜 대우 포기 결정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로이터통신은 "미국이 부과한 광범위한 관세와 중국의 보복 조치를 놓고 양국 간 무역 갈등이 벌어진 이후에 나온 것"이라 전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 같은 결정에 "무역협상에 걸림돌이 돼 왔던 미국과의 쟁점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인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WTO 체제로 대표되는 다자무역질서를 훼손해온 상황에서, 중국이 '다자주의'를 적극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블룸버그에 "다자무역체제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인 헌신을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며, 이는 WTO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미국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룰 것"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 이혜미 특파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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