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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이슈 애니메이션 월드

    타인에 내보인 마음 돌고 돌아 결국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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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 '연의 편지'

    편집자주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일상인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 사이로 책장을 끼워가며 읽는 만화책만의 매력을 잃을 수 없지요. 웹툰 '술꾼도시처녀들', 오리지널 출판만화 '거짓말들'의 만화가 미깡이 한국일보를 통해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만화책을 소개합니다.


    한국일보

    연의 편지·조현아 지음·손봄북스 발행·264쪽·1만6,500원


    '연의 편지'를 빠르게 읽으면 꼭 '연애편지'처럼 들리는 데다가, 단행본 표지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과 남학생이 그려져 있어, 처음엔 알콩달콩한 학원 로맨스물인가 싶었다. 하지만 만화를 다 보고 표지 그림을 다시 뜯어보면 새삼 새롭게 보인다. 여학생 '소리'가 손에 편지를 든 채 성큼성큼 걷고 있는데, 앞표지의 남학생 '동순'을 향한 게 아니라 어떤 발자국을 따라가고 있는 거였다. 책을 뒤집자 발자국은, 반딧불이가 든 병을 들고 주위를 밝히는 또 다른 소년, 수수께끼 같은 인물 '호연'에게 닿는다. 이 작품은 소리와 동순 두 친구가 호연이 남긴 편지, 즉 '연의 편지'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다.

    중학교 3학년 소리는 반에서 따돌림당하는 친구를 도왔다가 새로운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한 끝에 결국 전학을 간다. 트라우마 때문에 새 학교에도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혼자 지내던 어느 날, 책상 서랍에서 편지를 발견한다. "안녕! 우리 학교에 온 걸 환영해. 이 편지는 네게 이곳을 소개하기 위해 쓰였어." 첫 번째 편지는 반 친구들과 선생님, 학교 공간을 다정하게 소개하는 내용. 두 번째는 도서관, 세 번째는… 편지마다 다음 편지를 숨겨둔 위치가 적혀 있어, 소리는 편지를 찾아 학교 곳곳을 누비게 된다.

    그 여정 속에서 낯설고 두렵던 학교는 점차 친근한 풍경으로 바뀌고, 소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연다. 독자는 그 과정을 따라가며 누군가의 다정한 마음과 친절한 말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소리와 함께 편지를 추적하는 동순은 소리만큼, 아니 세상 누구보다 호연을 찾고 싶어 한다. 동순과 호연은 비밀의 공간에서 마법 같은 시간을 공유한 각별한 사이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호연은 사라져 버렸다.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째서 이런 편지들을 남긴 것일까. 세 친구는 기억의 실마리를 더듬어 나간 끝에 마침내 인연의 비밀과 마주한다.

    한국일보

    조현아의 '연의 편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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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제목의 '연'이 호연의 연이면서 동시에 '인연'의 연(緣)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맺어온 수많은 관계들이 떠오른다. 사람은 사람에 의해 바뀌는 존재. 편지 한 장이 마음을 흔들고, 단 한 번의 다정한 배려와 용기가 누군가의 앞날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내가 내보인 마음이 지금 당장은 응답받지 못해도, 돌고 돌아 결국은 나에게 되돌아온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인연의 흔적은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도록 마음을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

    참, '연의 편지' 애니메이션이 곧 개봉한다는 소식이다. 한 컷 한 컷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 그림을 스크린으로도 볼 수 있다니 무척 설레고 기대가 된다. 아직 연의 편지를 받지 못한 독자라면 지금, 만화책이든 애니메이션이든 꼭 만나보길 바란다.

    미깡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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