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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이슈 미술의 세계

    “컷 해도 계속 먹게, 캐릭터도 살려서”…드라마 속 푸드 스타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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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철인왕후’ 장면. 티브이엔(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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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 한상푸드필드의 차남이자 서울 최고 파인다이닝 모토의 이사 한범우(강하늘)는 ‘다이망 가이드’ 별 3개를 받기 위한 레시피 개발에 몰두한다. 고심 끝에 장영혜(홍화연) 셰프의 너비아니를 채택했는데, 전주의 한 식당에서 흡사한 요리 섭산적이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당장 식당을 찾아가 섭산적을 맛본 한범우는 그곳의 모연주(고민시) 셰프와의 신경전도 뒤로한 채 그 맛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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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철인왕후’ 속 신선로. 고영옥 초록찬장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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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순양그룹의 진양철 회장과 아내, 아들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다. 반짝이는 놋그릇에 밥과 뽀얀 사골국, 애호박 나물과 육전 등이 정갈하게 담겼다. 장남 진영기는 한도제철 인수 건과 관련해 모처럼 공을 세웠다며 자랑하지만, 진 회장은 칭찬 대신 쓴소리를 한다. 그러던 진 회장은 대뜸 “이 집 가장 국 식었다”며 아들의 국을 다시 달라고 며느리에게 말한다. 그릇에 뜨끈한 국물이 채워지고, 진영기는 드디어 가장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벅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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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장면. 티브이엔(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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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당신의 맛’(ENA·2025)과 ‘재벌집 막내아들’(JTBC·2022)의 한 장면이다. 모두 음식이 등장하는데, 전자에선 이야기를 이끄는 핵심 요소로, 후자에선 1980년대 재벌가라는 배경을 알려주는 요소로 기능한다. ‘대장금’(2003)부터 ‘식샤를 합시다’(2013∼2018), ‘철인왕후’(2020), 최근 종영한 ‘폭군의 셰프’(2025)까지 음식이 등장인물 못잖은 비중으로 활약하는 드라마가 꾸준히 사랑받으면서 이들 음식을 만드는 이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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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꽃보다 남자’ 속 브런치. 고영옥 초록찬장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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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속 음식은 보통의 요리사가 아니라 푸드 스타일리스트의 손에서 탄생한다.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에 나오는 음식을 어떻게 드러낼지 구체화하는 작업부터 시작해, 대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메뉴를 바꾸기도 한다. 이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미술팀, 소품팀 등과 각본, 참고할 사진 등을 주고받으며 최종 시안을 확정하는데, 이 과정만 몇달이 걸린다.



    드라마 ‘초콜릿’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당신의 맛’, 영화 ‘자산어보’ ‘아가씨’ 속 음식을 만든 김민지 꾸밈 대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제가 대본을 읽고 의견을 드리면 작가님이 코멘트를 쓰고 제가 재수정하는 과정이 있다”며 “이미 촬영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대본을 빠르게 읽고 레퍼런스를 드린다”고 설명했다. ‘아가씨’의 경우 5초짜리 장면을 위해 몇달간의 자료 조사와 15일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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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애마’ 속 1980년대 파티 음식. 김민지 꾸밈 대표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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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캐릭터의 특성, 서사를 반영해 음식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어설픈 솜씨로 요리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그린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 등장하는 요리는 간장과 기름 없이 정성스럽게 차린 것이어야 한다. 김 대표는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저는 발췌본이 아니라 전체 대본을 받아 작업한다”며 “예컨대 ‘피가 흐르는 케이크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누구를 위한 케이크인지, 왜 피를 흘리는지 등을 알아야 색깔과 점도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대적 배경 또한 주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1980년대 재벌가에서 썼을 법한 식기와 식재료가, 타임슬립물 ‘철인왕후’에는 조선의 식재료를 활용한 현대적인 퓨전 요리가 등장한다. 이 두 드라마와 ‘식샤를 합시다’ 등에 참여한 고영옥 초록찬장 대표는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1980년대 회갑 잔치를 재현하기 위해 그 시대에 있었던 꽃과 회장님이 좋아할 만한 콘셉트 등을 미리 다 조사해 제안했다”며 “음식도 완전히 모던하진 않으면서도 그 시대의 좋은 음식들을 미리 접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고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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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당신의 맛’ 속 해산물 도시락. 김민지 꾸밈 대표 인스타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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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핏 화려해 보이는 작업 같지만, 실은 고달플 때가 많다. 물과 불이 없는 촬영 현장에서 음식을 준비해야 하거나, 잠깐의 장면을 위해 대용량의 요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김 대표는 “드라마 ‘초콜릿’은 병원 배경이라서 조리 과정이 나오면 70인분 이상이 보여지도록 준비해야 했다”고 전했다. 고 대표는 “촬영 중 빛이나 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촬영장 한켠 어두운 곳에서 조용히 요리하기도 한다”며 “여러번 찍어야 하니 실제 필요한 양의 6∼10배 정도로 음식을 준비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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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속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 고영옥 초록찬장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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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음식이 ‘정말 맛도 있을까?’ 하고 궁금해한다. 보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은 맛에도 신경 쓴다. 배우가 맛있게 먹어야 생생한 연기가 나온다는 철학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전부 다 먹을 수 있는, 제일 좋은 유기농 재료를 사용해 요리한다”며 “배우들이 카메라가 꺼지면 음식을 뱉어야 할 때도 있지만, 가장 신경쓰는 게 믿고 먹을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영화 ‘좋아해줘’ 때는 따로 최지우 배우가 레시피를 묻기도 하고, ‘당신의 맛’ 때는 강하늘 배우가 여러 테이크를 가면서 떡갈비 1.5㎏를 모두 드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고 대표는 “‘철인왕후’ 주인공 신혜선씨가 장조림이 너무 맛있다며 따로 싸달라고 한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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