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 해결 도와 자랑스럽다"
내년 수상 노린 정치적 행보 분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태국·캄보디아 평화 협정 서명식에 참석하며 활짝 웃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년 만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 모습을 드러냈다. 태국과 캄보디아 평화 협정 서명을 직접 주재하며 ‘세계 평화 중재자’ 이미지를 적극 부각했다.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이 불발되자, 내년 무대를 겨냥한 외교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태국-캄보디아 3개월 만에 완전 휴전
26일 방콕포스트 등에 따르면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와 훈마넷 캄보디아 총리는 이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휴전 협정문에 서명했다. 협정에는 △적대 행위 종식 △국경지대 중화기 철수 △포로 송환 등의 내용이 담겼다.
양국은 지난 7월 국경 영유권을 두고 중화기와 전투기까지 동원한 교전을 벌였다, 닷새간 이어진 충돌로 43명이 사망하고 약 3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협상을 지렛대로 휴전을 압박했다. 이후 가까스로 총성은 멎었지만, 이후에도 소규모 충돌이 잇따랐다. 그러나 이번 협정으로 갈등은 3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봉합됐다.
이날 전 세계의 이목은 화해 당사국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에게 쏠렸다. 그는 협정문 서명을 지켜보며 연신 미소를 지었고, 태국과 캄보디아 정상이 손을 맞잡자 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나라가 무력 충돌을 끝내는 역사적 협정을 맺었다”며 “미국을 대표해 (분쟁) 해결을 도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이들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했던 일을 우리가 해냈고, 수백만 명의 목숨을 살렸기 때문에 매우 흥분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2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태국·캄보디아 평화 협정 서명식에서 아누틴 찬위라꾼(왼쪽) 태국 총리, 훈마넷 캄보디아 총리와 함께 서명 문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AP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세안 복귀에 숨은 정치적 계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를 배경으로 ‘피스메이커’로서의 위상을 과시했다. 2017년 필리핀 마닐라 회의 이후 8년 만의 복귀다. ‘미국 우선주의’ 기조 아래 아시아 다자외교를 외면해온 그가 돌연 동남아 외교 무대를 찾은 배경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트럼프는 역사적으로 아세안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며 “태국과 캄보디아 평화 협정에 참석해 공을 차지하는 것이 그가 아세안 정상회의에 간 유일한 이유”라고 꼬집었다.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도 “트럼프가 협정 주재를 정상회의 참석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전했다. 결국 올해 노벨평화상 꿈이 좌절된 그가 동남아 최대 정치·외교 이벤트인 아세안 정상회의를 ‘내년 도전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다는 의미다.
지난달 이스라엘 텔아비브 주재 미국 영사관 밖에서 시위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묘사한 노벨상 메달 모양 팻말을 들고 있다. 텔아비브=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8월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던 캄보디아는 이번에도 그를 극찬했다. 수오스 야라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없었다면 협정은 체결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서명은 태국과 캄보디아가 하지만, 그가 자리에 참석함으로써 협의 정당성이 더욱 강화됐다”고 치켜세웠다.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도 “세계는 평화를 증진하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며 분쟁 종식을 위한 그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동티모르 아세안 회원국 승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만나 50% 고율 관세 갈등 완화 방안을 논의한다. 이어 27, 28일 일본 도쿄를 방문한 뒤, 29일부터는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석해 한미·미중 정상회담을 갖는다.
한편 이날 정상회의에서는 동티모르가 아세안의 11번째 회원국으로 공식 승인됐다. 2011년 가입 신청 이후 14년 만으로, 2000년대 이후 아세안의 첫 신규 회원국이다.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총리는 “오늘 역사가 만들어졌다”며 “동티모르인들의 꿈이 실현된 것일 뿐 아니라 우리의 여정을 강력히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