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산토리홀은 '휴대폰 억제장치' 운영
한국은 전파법·안전 문제로 도입 난항
예술의전당이 공연장 로비에 설치한 공연 에티켓 안내 모니터. 휴대폰 사용 예절을 안내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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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4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에서 라벨 협주곡 연주 도중 1층 객석에서 휴대폰 유튜브 영상 소리가 울려, 연주자는 물론 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공연 중 휴대전화가 의도치 않게 작동하지 않도록 다시 한번 확인하시고, 전원을 꺼 주시기 바랍니다. 관객은 제3의 연주자입니다. 최상의 공연이 되도록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7일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내한 연주회가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장의 공식 안내 방송에 이어 기획사 빈체로가 이런 공지를 한 번 더 내보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협연한 직전 공연에서 최악의 '관크(觀+critical·다른 관객의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가 벌어진 여파다. 국내 공연 관람 문화는 '시체관극(시체처럼 미동 없이 관람한다는 자조적 표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높은 집중도를 자랑하지만 휴대폰 문제만큼은 끊임없이 재발해 공연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이날 고요한 2악장에서 휴대폰 유튜브 영상 소리가 크게 울려 퍼져 연주하던 임윤찬이 객석을 힐끗 쳐다보기도 했다. 빈체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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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음악당 로비에 놓여 있는 공연 에티켓 안내문. 예술의전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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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대중화 역사는 20년에 가깝지만 국내 공연장의 휴대폰 에티켓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어두운 극장에서 화면을 밝히는 '폰딧불이'는 기본이고, 인공지능(AI) 탑재 등 기능 고도화로 벨소리뿐 아니라 예측 불가한 소리를 내는 사례가 잦아졌다. AI가 공연장에 흐르는 음악을 인식해 갑자기 큰소리로 곡명을 알려주는가 하면, 지난여름 서울시향 공연에서는 불경이 흘러나오는 사고도 있었다.
통제 안 된 휴대폰이 공연을 망치는 일이 빈발하자 공연계에서 원천 대책으로 재삼 주목하는 것이 '공연장 전파 차단'이다. 공연계 관계자는 "벨소리만 조심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휴대폰에서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소리가 날 수 있어 전파 차단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 산토리홀을 비롯한 주요 공연장들이 총무성의 허가를 받아 '휴대전화 억제 장치'를 운영하는 일본 사례도 소환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 국립극장과 예술의전당 등에 전파 차단기가 시범 설치됐다가 전파법 등 관련 법규 위반 소지로 2003년 철거됐다. 긴급 재난 문자 수신이 불가능해지는 등 공공 안전을 해친다는 지적과 함께 디지털 프로그램북, 실시간 자막 등 미래형 공연 서비스와 충돌한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일본도 공연장에서 면허 없이 휴대폰 억제 장치를 설치하면 5년 이하의 구금 또는 250만 엔(약 2,3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공연장, '이중·삼중 안내 방송' 고육책
'슬립노모어' 입장 시 받게 되는 폰백. 제작사에서 흰색 잠금장치를 열어 줘야만 휴대폰을 다시 꺼낼 수 있다. 미쓰잭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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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관크'의 확실한 예방책인 전파 차단이 법적 제한에 묶인 터라 공연장과 기획사들은 안내 강화 외에는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빈체로는 당분간 모든 공연에서 '이중 안내방송'을 실시할 계획이다. 7일 공연에서는 1부뿐 아니라 이례적으로 2부 시작 전에도 같은 메시지를 방송했다. 많은 공연장은 공식 안내 후 하우스 어텐던트(공연장 안내원)들이 좌석을 돌며 관람 에티켓을 재공지한다. 한 공연장 관계자는 "최근 임윤찬·조성진 등 스타 연주자가 출연하는 공연에 기업 협찬 비중이 커지면서 관람 경험이 적은 초대 손님이 늘었다"며 "이런 공연은 하우스 어텐던트 안내를 한층 더 강화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는 공연도 확산하는 추세다. 스웨덴 메탈 밴드 고스트는 최근 월드투어 공연에 '폰 프리 콘서트' 정책을 도입, 입장할 때 스마트폰과 촬영기기를 잠금 파우치에 넣게 했다. 국내 이머시브(Immersive·몰입형) 공연 '슬립노모어' 역시 입장 시 전원을 끈 휴대폰을 잠금장치가 있는 '폰백(휴대폰 보관용 가방)'에 넣어 소지하게 한다.
휴대폰이 생활 필수품이 된 까닭에 공연장의 분투에도 전원을 끄는 관객은 여전히 많지 않다. 차선책으로 여겨지는 비행모드도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다. 한 공연 기획자는 "중장년 관객이 많은 공연은 복약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저녁에도 알람을 설정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비행모드에서도 알람은 울린다"며 "최소한 알람 설정만큼은 꼭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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