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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아직도 힘겨운 파상풍과의 전쟁, 매년 희생 아동만 2만5000명… [의사와 함께 펼쳐보는 의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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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면 병이 나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전제가 된 이 문장이 과연 당연한 사실이 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던 시절, 세균과 바이러스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 위생과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이 머나먼 옛날이 아니라 기껏해야 100년, 200년 전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무지의 시대에 어떻게든 살리려 애썼던 의사들, 그리고 그 의사들에게 몸을 맡겨야만 했던 환자들의 이야기.

    파상풍, 최고 100%의 사망률
    19세기 이전에는 '불치의 병'
    치료법 진전에도 여전한 위협


    한국일보

    삽화=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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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상풍은 아주 무서운 병이다. 근육 경련, 근육 강직, 두통, 미열, 오한, 전신적 통증을 일으키며, 특히 안면 경련이 심하면 웃는 것처럼 보이는데 보고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100% 사망률까지 나올 정도다. 못이나 칼, 특히 녹이 슨 물건에 다치면 더 잘 감염될 수 있지만 토양에도 있기 때문에 맨눈으로 봤을 때 더러운 상처를 입었다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1㎝ 이상 깊이의 상처나 감염 증상을 보이는 자상이나 총상, 괴사된 조직이 있는 경우, 오염된 흙이나 거름에 노출된 상처의 경우에 발생 위험도가 증가한다.

    물론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대단히 발병률이 낮다. 예방 접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1년에 대략 10건가량이 발생할 정도로 드문 질환이며 대개 조기에 치료를 받기 때문에 치명률도 낮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특히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매년 7만~8만 명가량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신생아 파상풍이며, 2만5,000여 명의 신생아가 매년 파상풍으로 사망하고 있다.

    무서운 파상풍은 과연 언제부터 인류와 함께했을까. 아마 인류가 다치고 그 상처에 흙이 들어가는 순간, 사실상 인류의 탄생부터 함께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관련 기록도 매우 오래되었는데, 고대 이집트에서는 BC 1500년 경에 기록된 파피루스에도 기술되어 있다. 심각한 외상 후에 치통이 있는 사람, 입을 꽉 다물고 있는 사람, 목이 뻣뻣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쓰여 있다.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의사 히포크라테스는 아예 증례를 남겼다. 검지를 닻에 다친 여성에 대한 기록이다. 손가락이 일부 떨어져 나갔고, 해당 부위의 열과 통증이 나타나 여러 가지 치료, 즉 사혈 등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7일째에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해 혀와 턱, 목이 마비되고 경련하다가 사망했다는 기록이다. 당시 이집트나 그리스는 파상풍을 불치병으로 불렀는데, '사지가 뻣뻣해지면 자르는 수밖에 없다'는 기록까지 남아있다.

    성경에도 관련 묘사로 추정되는 장면들이 있다. 마태복음 8장 5절에서부터 8절이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매 한 백부장이 나아와서 도움을 청하니 이르되 주여 내 종이 집에 중풍병으로 누워 심히 괴로워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이까?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내 집에 모실 만한 자격이 없나이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나을 것이요."

    성경 구절에서 중풍이라고 하지만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한다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마비와 통증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 광견병 혹은 파상풍인데, 광견병은 불안이나 혼란 등 정신적 증상이 묘사되었을 것이라 파상풍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하여간, 파상풍에 대해 인류는 꽤 오랫동안 치료 방법 없이, 즉 걸리면 죽는 병으로 인식해 왔다. 딱히 치료하려는 시도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됐다. 방치했다기보다는 노력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던 것일 텐데, 16세기 저명한 의사인 파레가 삼킴장애를 연구하여 비정상적 수축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입을 벌린 채로 유지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했지만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세기에 접어든다. 이때는 생물에 전기를 통하면 경련 등 근육 움직임이 일어난다는 걸 알아낸 시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루이자 카를로 파리니라는 이탈리아 의사가 파상풍 환자에게 전기를 통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총상 감염으로 파상풍에 걸린 환자에게 직류 전류를 흘려보냈고, 전기 신호로 근육 수축이 변화하는 게 확인됐다. 근육이 움직인 것에만 집착, '성공했다!'라고 보고했지만, 전기를 끊은 지 약 30분 만에 다시 경련이 시작됐고 환자는 사망한다.

    또 입으로는 힘드니까, 아편을 항문에 넣은 뒤 전기를 통하게 하는 치료도 있었다. 그 유명한 저널인 란셋에 실린 치료다. 지금이야 아주 권위 있는 저널이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긴 어려웠던 거 같다. 그러다 1884년 안토니오 카를이 파상풍도 균이 원인이 되는 감염병이 아니겠냐는 주장을 한다. 그 후에 원인균이 클로스트리디움 테타니(Clostridium tetani)라는 것이 확인됐고, 일본인 의사 기타사토 시바사부로가 이 균을 분리해 낸다. 이를 토대로 에밀 폰 베링이 파상풍 독소를 중화시키는 혈청을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공로로 베링이 노벨상을 받게 된다.

    초기에는 말의 혈청을 이용했기 때문에 여러 아나필락시스(특정 물질에 대해 몸에서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것) 반응이 있었지만, 널리 쓰였다. 쓰지 않으면 죽는 병이니 사소한 부작용은 무시된 셈이다. 치료가 더 발전하게 된 계기는 1차 세계대전이었다. 파상풍은 총상에서 더 잘 발생할 수 있는데, 참호라는 열악한 환경까지 겹치다 보니 감염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때 에드몽 노카르드가 발병한 원시적인 항독소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923년 가스통 라몽이 개발한 백신 덕분에 파상풍 사망자 수가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이후 꾸준한 연구와 그에 따른 발전에 힘입어, 이제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박멸을 목표로 하는 질환 중 하나가 될 정도로 치료법에 진전이 이뤄졌다. 여전히 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질환이지만, 그래도 나아갈 길은 보이게 되었다. 파상풍에 대한 인류의 지난한 투쟁 역사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이낙준 닥터프렌즈 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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