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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OECD도 우려하는 한국 사교육 [지금, 대학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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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벚꽃 피는 시기로 망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위기다. 상아탑의 권위를 지키면서도 변화한 사회에 맞는 인재 배출에도 충실한 새로운 대학의 좌표를 전문가 칼럼 형식으로 제시한다.


    한국일보

    7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 천년홀에서 열린 종로학원 2026 정시 합격 가능선 예측 및 지원전략 설명회를 찾은 한 학부모가 바닥에 앉아 입시 자료를 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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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일 발표한 '한국 교육정책 전망(Education Policy Outlook in Korea)' 보고서는 한국 교육정책에 대한 매서운 경고장이나 다름없다.

    OECD 보고서는 학업성취도 등 일부 계량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 내용도 있지만,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한국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수학·읽기·과학 분야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비 실태가 날로 악화한다는 점과 사교육 위주의 주입식 교육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정보를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은 OECD 평균보다도 낮다는 따끔한 지적이 추가됐다.

    OECD는 한국 통계청 자료 등을 인용해 사교육비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지적한다. 2024년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9조2,000억 원이고, 사교육 참여율은 80%, 주당 사교육 참여 시간은 7.6시간에 이른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생 수가 줄고 있는데도 지출액과 참여율은 도리어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규모는 2024년도 교육부 예산이 95조6,000억 원임을 감안하면 사교육비가 교육예산의 30%를 상회하고, 가구당 16% 이상을 학원비로 쓴다는 점에서 매우 과다한 지출이라고 혹평한다.

    한국일보

    그래픽=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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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더 곤혹스러운 것은 이러한 막대한 비용이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데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OECD는 한국 학생들이 국영수의 기초 성적은 높지만, '사실과 의견 구분' 능력과 자기주도학습 역량에서는 OECD 평균에 못 미친다고 꼬집는다. 한국 학생의 읽기 성취도는 높지만 '사실과 의견 구분' 문제를 정확히 해결한 15세 학생 비율은 25%로 OECD 평균(47%)보다 낮고 출처 신뢰성을 평가하는 전략에 대한 지식도 평균 이하라는 것이다. OECD는 결론적으로 일부 분야에서의 높은 성취를 디지털 환경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으로 전환하는 것이 한국 교육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일보

    그래픽=이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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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같은 지적을 바탕으로 한국 교육을 좀 더 들여다보자. 첫째, 사교육에 입각한 단답형 주입식 교육으로 대학에서의 창의·융합 교육의 토대가 약해지고 있다. 새로운 전공을 설계하고 프로젝트 기반 수업을 확대하려 해도, 사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은 "시험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취업에 도움이 되느냐"만 묻는다.

    둘째, 과다한 사교육비 부담은 저출산과 지역대학 위기를 심화시킨다.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 기피와 사교육 시설이 우수한 수도권 쏠림을 부추기고, 이는 곧 지방대학의 학생 모집 어려움으로 되돌아온다.

    셋째, 무엇보다 교육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공교육만 믿고는 우리 아이가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이 합리적 선택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공교육은 '기본만 가르치는 곳'으로 밀려나고, 학교와 대학이 가진 본래의 교육적 권위와 책임은 점점 약해져 간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역대 정부마다 묘책을 세우려 노력해 왔지만 그 성과는 하세월이다.

    필자는 새 정부가 서울대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와 함께 '사교육비 줄이기'에도 총력을 기울이길 촉구한다. 사교육 문제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너무도 심각한 지경이다. AI와 데이터 경제가 직업환경 등 전반적 사회구조를 대변화시키고 있는 변곡점에 한국이 저차원적 사교육에 매달리는 한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의 절반이라도 문명대전환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 교육에 쏟아부어야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대학도 노력해야 한다. 대학은 AI·데이터 리터러시를 모든 전공의 공통 기반으로 삼고, 실패를 허용하는 교육 문화, 지역사회와 연결된 문제 해결형 교육을 중심에 세워서 초·중등 교육과의 선순환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 교육은 사교육에 갇힌 경쟁 프레임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새 길을 걸을 수 있다. 사교육의 성(城)을 허물지 않고 AI 시대의 교육혁신을 말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일보

    윤승용 남서울대총장·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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