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프로젝트’ 도전 지휘자 진솔
민간 악단 꾸려 10곡 중 8곡 완수
내년 4월, 9년만에 대장정 마무리
“볼품없는 시작이지만 새 길 지향
요구많은 말러도 응원하리라 확신”
8년 동안 ‘말러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는 지휘자 진솔은 “저는 ‘리틀 말러’”라며 웃었다. [아르티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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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는 너무 말이 많고 어려운데 심지어 요구도 난해해요. ‘앞으로 나아가지만, 빨라지지마’ ‘멈추는듯 하는데 느려지지마’ 이런 지시어를 써놔요. 가끔 어쩌라는 거지? 그런 생각도 들죠(웃음).”
지휘자에게 구스타프 말러는 에베레스트산과 같다. 삶과 죽음, 그 사이를 방랑하는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이방인이었던 말러를 독파하는 것은 지휘자의 정신세계를 옥죄는 일이었다. 화려한 이력을 쌓아왔던 위대한 장년의 지휘자들이 오르던 산을 30대의 젊은 여성 지휘자가 두드렸다. 2017년 시작한 ‘말러 프로젝트’가 어느덧 8주년을 맞았고, 이제 단 두 곡만을 남겨두고 있다. 민간 단체인 말러리안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 진솔이다.
최근 서울 강남구 풍월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진솔은 “젊고 허황된 마음, 벽을 허물고 싶다는 맹랑한 생각, 젊은 청년도 할 수 있다는 무모한 마음으로 말러 전곡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간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점은 지휘자가 ‘말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진솔은 “말러 교향곡은 워낙 대규모라 그만큼 인력과 자본이 많이 든다”며 “행정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데다 타악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공연을 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당연히 말러 음악이 담은 난해함과 복잡다단함을 온전히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막 서른이 됐을 때 시작해 해마다 하나씩 말러 교향곡을 무대에 올린 진솔은 코로나19로 공연계가 셧다운에 들어갔을 때에도 말러 프로젝트를 멈추지 않았다. 진솔은 말러 프로젝트를 꾸준히 이어온 것에 대해 “진짜 예술에 가까워지고 싶었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확립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해도 4번(26일 공연)으로 관객과 만났고, 최근에는 워너뮤직을 통해 말러 교향곡 3번 실황 음반이 나왔다. 이 음반은 2023년 7월 롯데콘서트홀 공연 버전이다. 진솔의 말러 프로젝트는 내년 4월 마무리된다. 그는 “무엇보다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며 “무모해도 끈을 놓지 않고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진솔은 정통 클래식 음악계에서 엘리트 과정을 밟았지만, 그의 행보는 남다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독일 만하임국립음대를 졸업, 합창 지휘에서 시작해 말러 프로젝트로 젊은 여성 지휘자의 영역을 확장했고, 게임과 애니메이션 지휘를 개척해 독보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드라마 ‘마에스트라’ 촬영 당시 배우 이영애의 지휘 선생님으로도 활약했다.
진솔은 “어릴 때부터 전 조금은 이단아적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원하는 스타일의 인재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며 “남들이 가본 길보다는 볼품없는 시작일지라도 새로운 길을 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말러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는 “말러든, 게임 음악이든, 창작 현대곡이든 무엇 하나 쉬운 악보는 없었다”고 했다. 특히 8년 동안 이어오는 말러 프로젝트를 위해 말러를 마주하고 탐구하며 그는 점차 말러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자부한다. 진솔은 “수많은 악보를 만나며 자연스럽게 난이도가 높은 곡들에 대한 익숙함이 생겼고,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하다 보니 의도하진 않았지만 말러를 따라 고뇌하며 내적·외적으로도 머리를 굳게 하지 않는 성장을 해온 것 같다”고 돌아봤다.
말러를 마주할수록 진솔은 말러와 자신 사이의 공통점도 발견한다. 그는 “말러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 스스로를 ‘리틀 말러’라고 생각해요(웃음). 제가 저를 볼 때도 종종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거든요. 몇백 년의 시차를 두고 이상한 사람끼리 서로를 알아보고 연구하는 과정이 즐거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말러도 그런 저를 응원하고 있다고 확신해요.”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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