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금 1억6000만원, 출판기념회 1억5000만원”
김민석 총리, 청문회 당시 밝히며 “통상적인 액수”
우상호 수석 아들 결혼, 축의금 창구 다수에도 긴 줄
과세 사각지대···법안 발의돼도 계류하다 폐기 다수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 도중 언론·대기업 관계자 이름과 축의금 액수가 적힌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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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딸 결혼식 축의금 논란이 계속되자 박수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요한복음 구절을 인용해 최 의원을 옹호했다. 이 발언의 배경에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가 경조사나 출판기념회를 통해 거액을 공공연하게 수수하는 관행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규제 법안이 발의되지만 여론의 분노가 잠잠해지면 흐지부지되는 일이 반복돼왔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아들은 지난 26일 국회 소통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축의금 접수창구를 다수 운영했는데도 하객 줄이 소통관 복도를 지나 로비까지 늘어섰다. 축의금 규모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억대’일 수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 7월 인사청문회 당시 재산 논란이 불거지자 “(빙부상) 부의금이 1억6000만원 정도 되는 것 같고, 출판기념회 둘 중의 한 번이 1억5000만원 정도, 그다음이 1억원 정도”라며 “국회의원들이 그런 경험을 했을 때 통상적인 액수”라고 말했다.
최민희 의원의 딸은 과방위 국정감사 기간인 지난 18일 국회 사랑재에서 결혼했다. 모바일 청첩장에는 축의금 신용카드 결제 기능이 담겨 있었고, 과방위 피감기관들도 화환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6일에는 최 의원이 국회 본회의 도중 언론사·대기업 관계자의 이름과 100만원 등의 액수가 적힌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최 의원 측은 축의금을 반환하기 위한 메시지였다고 해명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선교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도 최 의원 딸 결혼식과 같은 날 경기 양평군의 한 예식장에서 결혼했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29일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이 최 의원 사퇴를 요구하자 “(농해수위) 국정감사 기간에, 같은 날이었다. 이거 문제 아닌가”라며 맞불을 놨다. 노 의원은 “피감기관 화환들이 줄줄이 서서 (결혼식장) 안에 못 세우고 밖에 세웠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결혼식 축의금을 일부러 받지 않은 정치인도 있다.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황교안 전 국무총리, 황우여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무성 국민의힘 상임고문 등은 자녀 결혼식을 주변에 알리지 않거나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정치인의 경조사와 출판기념회는 뇌물성 금품이 전달될 수 있는 행사지만 과세가 어려운 법적 사각지대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의원 등의 선출직 공직자는 8촌 이내 친족을 제외하고 축의·부의금을 낼 수 없는데 정작 받을 수는 있다. 청탁금지법상 조의금 한도인 1인당 10만원을 초과해 받더라도 자진 신고하지 않으면 사실상 확인이 어렵다. 출판기념회는 국회의원 모금액 한도(연간 1억5000만원)에 포함되지 않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신고 대상이나 소득세법상 과세 대상도 아니다.
국민의힘은 최 의원을 뇌물죄로 고발하겠다지만 국회의원이 축의금을 받아 뇌물죄로 처벌된 사례는 없다. 축의금이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는 이익’이라고 인정돼야 뇌물죄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수수한 금품이 1회 100만원을 초과했다면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처벌한다. 다만 최 의원 측이 축의금을 반환했다고 밝혀 실제 처벌 가능성은 미지수다.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축의금을 빙자한 뇌물이라고 법리를 구성해야 하는데 당사자들이 부인하고 액수가 크지 않다면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며 “결혼식은 사회 의례적 행위이기도 하고 ‘축의금을 내면 잘 봐주겠지’란 막연한 기대감만으로는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인의 경조사나 출판기념회를 규제하는 법안은 수차례 발의됐지만 ‘셀프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4년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는 국회의원 경조사 규제를 포함한 ‘특권 내려놓기’ 혁신안을 추진했지만 정청래 당시 의원이 “국민은 자학적 제 살 깎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야당다운 야당이 되라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당내 반발에 밀려 무산됐다.
김영호 민주당 의원은 2022년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역민으로부터 축의·부의금을 받지 못하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1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출판기념회 수익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국회의원의 경조사에 피감기관이나 이해관계자를 부르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양심 문제”라며 “규제법을 근간으로 이해관계자끼리 돈을 주고받지 않는 정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이 지난 23일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딸 결혼식 화환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보좌진을 불러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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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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