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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빅쇼트' 주인공의 AI 거품론에…한국 증시 '검은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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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개월 만에 코스피, 코스닥 사이드카 동시 발동
    'AI 붐' 의구심에 반도체 의존 심한 코스피 충격
    한 달 새 20% 급등, 외국인 차익실현 매물 속출
    단기 가격 조정일지, 변곡점의 시작일지 주목


    한국일보

    코스피가 급락한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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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 없이 질주했던 코스피가 하루 만에 2.85% 폭락하며 가까스로 4,000선을 지켰다. 5,000을 넘어 6,000까지 넘볼 수 있을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내 증시는 예고 없이 '검은 수요일'을 맞았다. 미국 월가에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확산하면서 반도체 의존도가 심한 국내 증시는 직격타를 피할 수 없었다. AI 거품론이 해프닝으로 지나갈지, AI 열풍 자체가 '닷컴버블'처럼 신기루에 그칠지 변곡점에 서 있는 상황이다.

    5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17.32포인트(2.85%) 하락한 4,004.42에 마감했다. 코스닥도 24.68포인트(2.66%) 내린 919.89로 장을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61% 내린 4,055.47에 개장했다가 개장 6분 만에 4,000이 무너졌다. 10시 25분에는 3,900선마저 내줬으며, 10시 30분쯤 6% 이상 하락하며 3,867.81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시장에 공포심이 빠르게 확산되자 한국거래소는 오전 9시 46분 코스피 시장에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 효력정지)를 발동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에 관세 폭탄을 던진 4월 7일 이후 7개월 만이다. 코스닥 역시 장중 5% 이상 급락하면서 지난해 8월 5일 이후 15개월 만에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두 시장 동시에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도 15개월 만이다. 사이드카는 선물시장의 급등락이 현물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선물 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5% 하락하고 이 상황이 1분간 지속될 경우 발동된다.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전날 2조2,282억 원에 이어 이날도 2조5,181억 원을 팔아치우면서 지수를 대폭 끌어내렸다. 다만 오후 들어 개인투자자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4,000선을 다시 회복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였다.

    이러자 코스피 지수도 7거래일 만에 다시 4,000선을 위협받게 됐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반도체, 조선, 방산, 원전 등 한국의 수출 산업이 주목을 받으며 코스피가 6,000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증권가 전망도 무색해졌다.

    AI 거품론으로 미국이 기침하자 한국은 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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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성형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앱) 로고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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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증시 폭락은 간밤 미국의 펀드매니저 마이클 버리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에 대한 풋옵션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촉발됐다. 그는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2008년 금융위기 직전 미국 주택시장 붕괴를 예견하고 대규모 공매도로 엄청난 이익을 거둔 것으로 유명하다. 마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처럼 AI 산업에 커다란 거품이 껴있다는 그의 전망에 4일(현지시간) 엔비디아(-3.96%), 팔란티어(-7.95%)를 비롯해 알파벳(-2.13%), AMD(-3.70%), 메타(-1.63%) 등 빅테크 기업들이 줄줄이 하락했다.

    이 여파로 나스닥이 2%대 폭락하자, 국내 증시 전체가 휘청거렸다.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 중 삼성바이오로직스(0%)를 제외한 9종목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코스피 종목 79%(734개)가 파랗게 추락했다. 특히 최근 급등한 반도체, 조선, 방산 업종의 하락이 두드러졌다.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4.1% 하락한 10만600원에, SK하이닉스는 1.19% 내린 57만9,000원에 장을 마쳤다. 두산에너빌리티(-6.59%), 한화에어로스페이스(-5.94%), HD현대중공업(-6.88%) 등도 큰 폭으로 주가가 내렸다. 자산시장이 흔들리면서 비트코인 가격도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으로 10만 달러 지지선이 붕괴되기도 했다.

    "이미 포화" vs. "강세장 변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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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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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에선 AI 거품론을 계기로 과열된 증시에 조정이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홍콩에서 열린 글로벌 금융리더 투자 서밋에서 "기술주의 밸류에이션은 이미 포화 상태"라며 "향후 12∼24개월 내 10∼20%의 증시 조정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AI 주도 기업의 실적이 아직 탄탄하고 정부의 증시 부양 의지가 여전한 만큼 '패닉셀(투매)'은 지양할 것을 권장하는 의견도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2월 추가 기준금리 인하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10월 한 달 동안에만 코스피가 20% 이상 상승한 만큼 외국인의 단기적 차익실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1998∼1999년 코스피 단기 가격 조정도 평균 -12%로, 강세장에서도 생각보다 강한 가격 조정이 발생한 경험이 있다"면서 "코스피 12개월 예상 순이익은 285조 4,000억 원으로 10주 연속 상승했고 유동성 장세는 이익 추정치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강세장 기조는 변화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진단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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