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승인’에 제동
“신속한 배달 요구되는 업무 특성 고려해야”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인근 사거리에서 배달 오토바이들이 이동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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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신호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낸 배달기사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교통법규 위반이 있었더라도, 신속 배달을 요구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해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양순주)는 11일 배달기사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을 인용했다. A씨는 지난해 평택시의 한 교차로에서 전방 적색 신호를 위반해 직진하다가 우측에서 좌회전하던 차량과 충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이 사고로 A씨는 오른쪽 종아리뼈가 부러지고, 갈비뼈에 다발성 골절상을 입었다.
사고 당일 평택시에는 시간당 9㎜의 비가 내려 시야 확보가 어려웠다. A씨는 5건의 배달을 마친 뒤 여섯 번째 배달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이후 A씨는 지난해 5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공단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위반한 범죄 행위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며 불승인했다.
그러나 법원은 “배달기사는 고객의 불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속하게 배달할 필요성이 높은 바, 교통사고는 업무 수행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위험”이라며 비록 신호 위반이 원인이라도 산재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는 순간적으로 집중력과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교통신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신호 위반을 했고, 고의로 신호를 무시했다거나 현저히 주의를 게을리한 증거는 없다”고 봤다.
2022년 대법원도 협력사 교육에 참석했다 돌아오던 중 중앙선 침범 교통사고로 사망한 근로자에 대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업무 수행을 위해 운전하던 중 발생한 교통사고라면 신호 위반만으로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라며 “사고 경위와 양상, 운전자의 운전 능력 같은 사고 발생 당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업무 특성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원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계는 플랫폼 노동자의 산재를 폭넓게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은 “신호 위반의 경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재 불승인으로 이어지는 잘못된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라며 ”배달기사만이 아니라 택배, 대리운전 등 운송 노동 전반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남희 기자 nam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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