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윤 교수 ‘밀수 변천사’ 발표
1975, 1979년은 1만건 달해
1990년대 후반 年 2000건 감소
건수는 줄었지만 밀수총액 급증
7일 부산 동구 부산유라시아플랫폼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류상윤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가 ‘부산항과 밀수 변천사’를 주제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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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후반 1만 건에 달했던 국내 밀수 단속 건수가 1990년에 접어들며 급감했으나, 적발된 밀수 총액은 오히려 해마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류상윤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7일 부산 동구 부산유라시아플랫폼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부산항과 밀수 변천사’를 주제로 발표하며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류 교수는 부산항을 비롯한 전국 항구에서 이뤄진 밀수(밀무역) 추이를 수치로 분석했다. 밀수란 세관을 거치지 않고 몰래 진행된 수입·수출 행위를 뜻한다. 이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보여주는 통계는 거의 없다. 류 교수는 관세청이 발간한 ‘세관연감’과 ‘밀수부정무역사례집’, 1984년 발간된 ‘밀수백서’, 그리고 과거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1950년대부터 2000년까지의 밀수 단속 건수와 금액을 분석했다.
그 결과, 국내 밀수 단속 건수는 1960년대 약 1700건에서 1970년대 초 5000건으로 급증했고, 1975년과 1979년에는 1만 건을 넘어서며 정점을 찍었다. 이후 점차 줄어 1990년대 후반에는 연간 2000건 수준으로 감소했다. 부산항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나타났다. 1960년대 1000건 미만이던 단속 건수는 1970년대 후반 2000건을 넘은 뒤 점차 감소했다.
반면 단속 금액은 꾸준히 증가했다. 전국 밀수 단속 금액은 1990년대 초까지 2000억 원 미만이었으나 2000년대 초에는 8000억 원을 돌파했다. 류 교수는 “물가 상승과 함께 고가 밀수품이 늘어난 영향”이라며 “단속 실적은 단속 당국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통계 해석에 유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류 교수는 주요 사건을 토대로 ‘한국 밀수 변천사’를 시기별로 정리했다. 1960년대까지는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이른바 ‘특공대(독고다이) 밀수’가 성행했다. 무역 서류와 선원증을 위조한 어선이 밤중에 남해안을 출발해 일본 쓰시마섬에서 물건을 몰래 교환하는 방식으로, 치밀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당시 국내에 생필품이 부족해 고철과 김 등을 건네고, 일본에서 화장품과 의류 등을 들여왔다.
1970년대에는 활어선과 냉동 운반선을 이용한 밀수가 이어졌으며, 부산에서 제조된 필로폰이 일본으로 밀수출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컨테이너선을 활용한 대형 밀수가 등장하면서 단속 규모도 커졌다.
류 교수는 “밀수의 역사는 무역제도의 또 다른 단면”이라며 “부산항과 인근 항만을 통한 밀수는 형태만 달라졌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만큼 부산세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류 교수의 발표에 토론자로 나선 배석만 KAIST 교수는 “1970년대 전후 부산을 통해 문화재와 박제된 꿩 등이 대량 밀수출된 기록이 있다”며 “밀수입뿐 아니라 밀수출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부산시는 국내 최대 항만 세관으로서 공정무역 질서 확립에 기여해 온 부산세관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위해 이날 ‘부산세관과 부산지역사’라는 명칭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류 교수의 발표 외에도 △한국전쟁 시기 부산항과 물류관리 체계(서만일 전남대 교수) △옛 부산세관의 변천과 복원 당위성(강동진 경성대 교수) △부산해관 개청과 외국인 해관장(최보영 용인대 교수) 등의 주제가 다뤄졌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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