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최근 반환한 속초 신흥사 시왕도 ‘제십오도전륜대왕도’(第十五道轉輪大王圖). 절취되어 사라진 10폭의 시왕도 가운데 마지막 폭에 해당하는 그림이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강원도 속초 신흥사 절집에 걸려있다가 한국전쟁 당시 뜯겨나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이하 메트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갔던 ‘저승대왕’의 불화그림(시왕도)이 70여년 만에 돌아왔다.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의 이상래 이사장과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주지 적광 지혜 스님, 메트 박물관의 맥스 홀라인 관장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케이지아이티(KGIT) 센터에서 조선 후기 불화 ‘시왕도’ 한 점의 신흥사 반환 기념식을 열어 최근 메트 쪽이 절에 돌려준 시왕도의 마지막 그림 ‘제10 오도전륜대왕도’(第十五道轉輪大王圖) 실물을 언론에 내보였다.
시왕도는 불가에서 떠올리는 저승 세계의 모습을 담은 상상 그림의 일종이다. 현세를 떠난 망자를 저승에서 차례차례 심판하는 10명의 시왕(十王), 이른바 저승대왕들의 각기 다른 면모를 그렸다. 세간에도 널리 알려진 염라대왕이 시왕들 가운데 다섯번째다.
메트가 반환한 시왕도는 마지막으로 망자를 심판해 다음 생에 어디서 태어날지 정해주는 오도전륜대왕과 주위의 망자, 관리들을 묘사한 것이다. 그림의 오른쪽 테두리에 열번째 왕인 오도전륜대왕의 명칭과 ‘무오년’ 연대가 한자로 표기됐는데, 전문가들은 ‘무오년’을 조선 정조 22년인 1798년으로 추정하고 이 그림을 그해 그린 10번째 시왕도로 보고 있다. 그림 속 대왕은 머리의 양 귀 뒤쪽으로 날개 깃털 모양의 장식을 한 투구를 쓰고 왼손에 붓을 잡은 채 심판을 하고 있다. 그 아래 망자의 생전 기록을 보는 수하 저승 관리들과 끌려 나오는 알몸의 망자들 무리가 익살스럽게 표현된 부분도 눈길을 끈다.
1954년 초여름 찍은 속초 신흥사 명부전 내부의 벽면과 시왕상들 사진. 노란선으로 표시한 시왕상 뒤쪽 벽 부분이 원래 시왕도 10번째 화폭이 붙어있던 곳으로 불화가 절취돼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
이 시왕도는 가로 91.4㎝, 세로 116.8㎝ 크기로 원래 신흥사 명부전에 다른 시왕도 아홉폭과 같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직후 시왕도 열 폭이 모두 뜯겨 유출되면서 밀거래 등을 통해 미국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상래 위원회 이사장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조선총독부가 전국 주요 사찰의 재산 목록을 조사한 기록에 이 그림의 내역이 남아있고, 1953∼1954년 미군 장교들이 찍은 사진에도 보인다. 전쟁 직후 속초 지역이 미군정 아래 있었기 때문에 1954년께 미군에 의해 반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신흥사 시왕도의 귀환은 이번이 두번째다. 앞서 위원회와 절 쪽은 2015년부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등의 협조로 시왕도 환수를 위한 조사 활동을 본격적으로 벌여 2020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이 소장해온 시왕도 6점의 소재를 파악하고, 협상 끝에 처음으로 환수하는 성과를 올린 바 있다. 위원회와 절 쪽은 메트 누리집에서 시왕도를 소장품으로 찾아낸 뒤 실태 조사를 통해 신흥사 유물임을 확인하고 2023년부터 반환 협의에 나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메트 쪽은 소장한 시왕도를 지난 2007년 구입한 것으로 파악했고 지난 7월 메트 관계자가 내한해 추가 협의를 하면서 반환에 합의하게 됐다고 위원회 쪽은 전했다. 하지만 아직 환수되지 않은 3점의 시왕도는 여전히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신흥사 쪽은 경내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는 시왕도 6점과 이번에 귀환한 시왕도 1점을 절에서 함께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