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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탄핵은 성소수자에게 뭘 남겼나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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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지난해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가 차별의 문제를 공론화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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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2025년은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격변의 해였다. 시민들은 맨손으로 불법 계엄에 맞섰고, 서로의 손을 잡고 거리를 광장으로 넓히며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그 과정에서 성소수자 인권 의제가 단순한 ‘소수자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이자 확장의 동력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지난겨울 ‘남태령 대첩’의 승리는 이후 탄핵 촉구 집회에서 1만개의 무지개떡을 나누는 기적으로 변모했고, 6월에 열린 제26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전국농민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총연합이 최초로 참가하는 일로 이어졌다. 춘천퀴어문화축제는 슬로건을 ‘뿌리고 퀴우고 나누자’로 정하며 의미를 되새겼다. 추운 고개를 힘겹게 넘은 뒤 사회적 약자들은 서로의 투쟁을 민주주의 의제로 수렴시키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서울퀴어문화축제 첫 참여를 기념하며 ‘성소수자 인권 보도준칙’을 보완해 발표했다. 언론이 성소수자 인권을 공적 책임의 영역에서 진정성 있게 다루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올해엔 공공기관의 변화도 엿보였다. 5년마다 실시되는 인구총조사에서 국가데이터처는 처음으로 동성 커플을 배우자나 비혼 동거인으로 입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꿨다. 이는 성소수자의 삶을 국가 통계에 반영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뿐 아니라 질병관리청이 중앙행정기관으로는 최초로 서울퀴어문화축제에 공식 참여했다. 또, 국가인권위원장이 반인권적 행보를 이어가며 비판을 받았지만, 서울·대전·대구의 인권위 직원들은 각 지역의 퀴어문화축제에 부스를 열었고 광주인권사무소는 공동주관 단위로 참여했다. 기관 내부의 인권 의지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법원은 성별 정정에 외과적 수술을 강요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을 2024년에 이어 재차 내렸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가장 더딘 걸음을 보이는 것은 국회와 새 정부다. 용혜인 의원이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고, 이학영 국회부의장이 성소수자 인권 정책토론회를 열긴 했지만 환란을 막아낸 광장 이후의 새 시대를 열어 나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차별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 실낱 같은 희망이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예능 프로그램과 영화·연극 등 공연계에서 성소수자의 삶을 다룬 작품들이 많이 선보였다. 특히 책을 더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도 활발했는데, 170명의 앨라이(성소수자 인권 옹호자)가 모은 ‘단비책기금’은 한달 동안 전국 16개 독립서점을 통해 청소년과 청년에게 304권의 퀴어·앨라이 도서를 선물하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다.



    물론 보수 개신교계의 혐오와 차별은 여전히 거세다. 성소수자에게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교회 재판에 넘겨진 감리회 목사들이 정직·면직 등 중징계를 받았다. 신앙을 가진 내란의 옹호자들이 서로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치켜세우는 꼴을 보니 올 한해 거둔 여러 성과에도 2026년 역시 혐오와 차별과의 싸움은 지난할 것 같다.



    2025년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인공 루미가 ‘다름’을 긍정하며 힘을 얻었듯이 한국 사회도 성소수자의 ‘다름’을 두려워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가족과 이웃, 동료로 받아들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소수자 인권이 민주주의와 시민권의 핵심 의제로 자리 잡을 때, 포용과 평등을 심는 사회로 나아갈 테니까. 새해 소원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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