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을 하고 있는 쿠팡맨.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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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 |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보건학 박사
요즘 ‘새벽배송’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열어 새벽배송을 주문하는 일은 특별한 고민도 망설임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편리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밤잠과 건강을 대가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수면 부족, 생체 리듬 교란, 사고 위험 증가, 심혈관 질환과 암 발생률 상승 등 야간노동의 건강 위험은 이미 수많은 연구에서 명확히 밝혀져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새벽배송이 단순히 편리함을 위한 혁신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소 사후적으로 평가하자면 새벽배송은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기업의 전략적 도구로, 과거 대형마트의 ‘미끼 상품’처럼 기능해 왔다. “남보다 빠르게”, “아침 출근 전에 도착하는 배송”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고객을 끌어들였고, 이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소비자는 배송 속도를 서비스 평가 기준처럼 받아들이게 되었고, 새벽배송은 필요성을 따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기본 옵션이 되었다. 즉, 우리가 거리낌 없이 새벽배송을 누르게 된 구조 자체가 몇몇 기업의 시장 장악 전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 경쟁을 실제로 떠받쳐 온 것은 다름 아닌 노동자의 심야 노동이다. 노동자들은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감내하며 일했고, 짧은 휴식으론 체력을 회복하기 어려웠다. 실제 필요보다 훨씬 빠른 속도를 맞추기 위한 심야 고강도 작업은 피로 누적, 과로사와 사고 위험을 크게 높였다. 결국 편리함의 이면에는 노동자의 건강 악화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야간노동, 교대근무, 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국제기구와 연구자들은 최소 기준을 마련해왔다. 1990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야간노동을 고위험 작업으로 규정하고 정기적 건강 검진과 건강 문제 발생 시 주간 업무로의 전환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2003년 유럽연합(EU)은 주당 48시간 이하의 노동, 하루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 야간근무 시 노동시간 제한(하루 평균 8시간 이하)과 같은 노동시간에 관한 지침을 만들었다. 2020년 북유럽 연구자들은 3일 이상의 연속 야간근무를 피하고, 교대근무 시 9시간 이상의 노동을 제한하며, 하루 최소 11시간의 회복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몇몇 기업이 만들어낸 속도 중심의 구조를 재검토해야 한다. 야간 작업은 꼭 필요한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하며, 불가피하게 야간노동이 필요한 경우에는 명확한 건강 보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야간근무 시간의 제한, 근무 이후 충분한 휴식 보장, 연속 야간근무 일수 제한, 건강 문제 발생 시 주간 업무로의 전환 의무화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는 노동자, 기업,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심야 노동을 줄여나갈 수 있는 사회적 협의가 필요하다.
소비자 역시 이 변화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배송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고, 선택지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의 시장 장악 전략에서 시작한 그 편리함이 노동자의 건강을 희생해야만 성립되는 구조라면, 그 편리함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새벽배송은 분명 편리한 서비스이지만, 그 편리함이 노동자의 건강을 소모하고 특정 기업의 이윤으로만 귀결된다면, 이제는 그 궤도를 수정해야 할 때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조금 더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순간의 편리함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우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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