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 워싱턴디시에서 열린 2026 북중미월드컵 조 추첨식에서 1회 국제축구연맹(FIFA) 평화상을 받았다. 잔니 인판티노 피파 회장은 “우리가 지도자에게 바라는 점을 갖췄다”고 추켜세웠고,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는 더 안전한 곳이 됐다”며 자찬했다. 스포츠와 정치권력이 언어유희를 통해 세상을 현혹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기억될 만하다.
뜬금없이, 비밀리에 결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피파 평화상 수상을 비판한 매체는 여럿이다. 이 가운데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7일치 1면 톱과 2면 해설 기사를 통해 “월드컵에 정치적 요소를 끌어오고 있다”며 큰 비중으로 다뤘다. 기사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스포츠와 관계가 두드러진다. ‘강함’이라는 이미지를 연출하고, 근육질 남성 운동선수들에 대한 동경도 숨기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확한 지적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뒤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 경주대회인 데이토나 500 트랙에서 전용 리무진 ‘캐딜락 원’을 타고 선도에서 주행했고,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 결승전인 슈퍼볼 대회를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직관했다. 내년 6월 백악관 앞에서는 독립 250년 기념 격투기 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모두 스포츠를 대중적 인기의 수단으로 삼는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포츠 영역에서도 자기 의지를 관철하거나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취임 뒤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의 여성 스포츠 경기 출전을 금지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고, 자신이 소유한 스코틀랜드의 턴베리 골프장에서 ‘디 오픈’이 개최돼야 한다고 조직위 쪽을 압박했다. 최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자 결정을 앞두고, “역대 최고 투수 중 한명으로 꼽히는 (약물 추문의) 로저 클레먼스가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지 못한 것은 소문과 조롱 때문”이라며 투표에 개입하는 발언을 했다.
영국의 인권단체 ‘페어스퀘어’는 10일 평화상 시상을 주도한 인판티노 피파 회장이 정치 중립을 요구한 내부 강령을 위반했다며 피파 윤리위에 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절대 권력자인 트럼프 대통령이나 피파 상업주의를 대표하는 인판티노 회장은 거미줄 같은 규정이나 주변의 눈총을 ‘말벌처럼’ 뚫고 지나갈 뿐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인 피파 평화상 수상의 씁쓸한 단면이 방증한다.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 kimck@hani.co.kr
내란 종식 그날까지, 다시 빛의 혁명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