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영국 런던의 한 주택가 모습. 최저 기온 4도의 늦가을 날씨에 이미 난방 연기가 나는 집도 있다. 유럽 각국 정부는 겨울철 에너지 부족을 막기 위한 대비에 나섰다./김효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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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6년째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중국인 빅토르 자오(36)씨는 요즘 난방비가 걱정이다. 그는 “작년 겨울에는 월 180~200파운드(약 34~38만 원) 가량 난방비가 나갔는데 공급 업체로 부터 올해는 요금이 더 오를 수도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아직까지 난방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전기 매트로 버티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추워지면 어떨지 걱정이 많다”고 했다.
에너지 시장의 위기를 일으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이 네 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각국은 강추위가 와도 충분하도록 천연가스 비축량을 확보했다고 자신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 “올 겨울 춥다” 예보에 시장 ‘들썩’
지난 10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유럽 중기 예보센터(ECMWF) 등 유럽.미국 기후학자들이 올 겨울 북극의 차가운 공기를 가두는 역할을 하는 극소용돌이가 약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극소용돌이는 극지방 대류권 상층부에서 성층권까지 형성되는 차가운 저기압 소용돌이로 이 기류가 약하면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해 북반구가 전반적으로 추운 날씨를 겪게 된다. 지난해 기후 변화 등의 이유로 이례적으로 따뜻한 겨울을 겪었던 북반구가 올해는 때때로 ‘이상 한파’를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런던 소재 기상 기업 오픈웨더의 기상학자 댄 허트는 “12월로 갈수록 극소용돌이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비교적 온난한 겨울이 될 것이라는 전망 속에 5년내 최저가를 유지하던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런던 ICE 거래소에 따르면 14일 유럽 벤치마크인 네덜란드 TTF 12월물 가격은 전날 대비 2.6% 오른 메가와트시(MWh)당 31.25유로에 거래 종료됐다. 미국 천연가스 시장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NYMEX)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MMBtu(천연가스 열량 단위)당 4.5달러를 넘어서며 2022년 이후 약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5일 벨기에 브뤼셀 도심에서 노숙자들이 쉬고 있다. 벨기에 연방정부는 최근 올해 겨울철 한파 대비 계획(Plan Grand Froid)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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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가스 비축량 충분”선언에도 불안 여전
유럽연합(EU)의 겨울을 앞두고 천연 가스 저장량 수준이 약 83% 도달하며 견고한 공급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유럽 가스 수송 시스템 운영자 네트워크(ENTSOG)의 연례 겨울 공급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비축량은 EU 수요를 충족하기에 충분하다. 보고서는 특히 “러시아산 천연 가스 및 LNG 수입이 완전히 중단되는 상황에도 공급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가스로부터 EU가 완전히 독립하는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다.
EU 에너지 장관 회의체는 2028년 1월자로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EU는 여전히 러시아산 가스의 가장 큰 수입국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50억 유로(약 8조 4600억 원) 어치를 수입했다. EU의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 감축은 내년 1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EU의 가스 비축량이 충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같은 시기 비축량이 92.6%였던 것을 고려하면 지난해보다 더 추운 겨울이 될 경우 에너지 비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각국은 ‘에너지 독립’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섰고, 프랑스와 벨기에 등은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거나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영국 정부는 정책을 통한 에너지 소비를 감축에 나섰다.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부터 겨울철 난방 수요 급증에 대비해 가정용 가스·전기 요금 상한선을 35파운드(약 7만 원) 인상했다. 에너지 요금 상한제는 영국 전역 2000만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 상한선 이상을 넘어가는 사용량에 대해서는 요금이 부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상한선이 확대되면 사용량에 따라 더 높은 요금을 부과할 수 있는 셈이다.
현지에서는 일반적인 가정이 높아진 에너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영국 전력시장 독립 규제기관 오프젬(Ofgem)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의 전력 사용량이 전년 동기 대비 7억 5000만 파운드 이상 높았으며, 이 기간 에너지 비용을 내지 못한 가구 수가 100만 가구를 돌파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런던=김효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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