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 개척’ 장보고함, 내달 퇴역
우리 해군의 ‘잠수함 시대’를 열었던 첫 잠수함 장보고함이 다음 달 퇴역을 앞두고 1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군항에서 출항하고 있다./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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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해군의 ‘잠수함 시대’를 열었던 첫 잠수함 ‘장보고함(SS-061)’이 다음 달 퇴역을 앞두고 19일 경남 창원시 진해군항에서 마지막 항해를 마쳤다. 1992년 독일에서 우리 해군이 인수한 후 햇수로 34년 만이다. 그간 장보고함은 지구 둘레 15바퀴가 넘는 약 34만2000해리(약 63만3000㎞)를 항해하며 국토 수호의 임무를 다했다.
장보고함은 이날 오후 해군 잠수함사령부가 있는 진해군항을 출항해 2시간가량 마지막 항해를 했다. 장보고함의 마지막 항해에는 초대 함장이었던 안병구(76) 예비역 준장과 무장관·주임원사 등 장보고함 인수를 위해 독일에 갔던 요원 4명이 동승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장보고함이 진해군항에 돌아오자 항에 정박해 있던 잠수함들은 일제히 기적을 울리며 축하했다. 안 전 함장은 본지에 “마지막 항해를 마치고 진해 군항에 돌아오는 순간, 훈련에서 복귀해 귀항하던 과거가 생생하게 떠올랐다”며 “34년간 임무를 잘 수행한 장보고함을 보니 내 자식 일처럼 뿌듯하고 행복하고 감사했다”고 말했다.
초대 함장도 동승해 “굿바이, 장보고함” - 장보고함의 마지막 항해를 앞두고 안병구(오른쪽) 초대 함장과 이제권(소령) 현 함장이 19일 경남 진해 해군기지에 정박 중인 장보고함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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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함 도입은 우리 해군이 ‘수중’을 개척한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소련에서 잠수함을 도입해 1980년대에 이미 10여 척의 잠수함을 운용 중이었다. 1987년 한국은 독일 하데베(HDW)조선소에 1200t급 디젤 잠수함을 주문하고, 그 설계와 기술을 전수받아 잠수함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통일신라 시대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양을 개척했던 장보고 대사(大使)의 이름을 따서 1번 함을 장보고함으로 명명했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장보고급(SS-Ⅰ) 잠수함 8척을 국내 건조하며 잠수함 제조 능력을 확보했다. 2010년대 들어 한국은 3000t급 잠수함도 독자 설계·생산할 수 있게 됐고, 현재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추진하고 있다.
안 전 함장을 비롯한 해군 요원들은 1990년부터 독일에 파견돼 잠수함 운용 훈련을 받았다. 1991년 진수된 장보고함을 해군이 최종 인수한 것은 1992년 10월로, 화물선에 실려 국내에 반입된 장보고함은 1993년 6월 취역했다.
잠수함은 잠항과 부상 과정에서 여러 위험에 노출된다. 그래서 잠수함사령부에는 ‘100번 잠항하면, 100번 부상한다’는 안전 신조가 있다. 장보고함은 우리 해군의 1번 잠수함으로 이를 마지막까지 지켜냈다. 안 전 함장은 “잠수함은 잠항했다가 부상할 때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며 “함을 운용하면서 죽을 뻔한 위기를 수도 없이 겪었다”고 했다.
장보고함은 환태평양훈련·한미 연합대잠전 훈련,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 훈련 등 주요 해외 훈련에 모두 참가한 첫 잠수함이다. 훈련 상황이긴 했지만 2004년 환태평양훈련 당시 미국 항공모함을 포함한 함정 30여 척을 가상 어뢰로 명중시키면서도 한 차례도 탐지되지 않았다. 해군이 1200t 디젤 잠수함으로 그만큼 뛰어난 운용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당시 미 사령관은 “장보고함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통상 한 번 바다에 나가면 약 3~4주간 수중에서 임무를 수행한다. 승조원 1인당 거주 공간은 1.1평 정도로 교도소 독방 수준(1.63평)보다 비좁다. 침대가 부족해 승조원 3명이 2개의 침대를 돌아가며 사용하는 ‘핫 벙킹(Hot Bunking·앞사람이 누워 있던 자리라 이미 따뜻하다는 뜻)’ 방식으로 잠을 잔다. 물을 아껴야 하니 샤워는 못하고 양치도 마음껏 하기 어렵다. 소음이 발생하면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 큰일을 보고 나면 물총으로 뒷처리를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장보고급 잠수함에서 근무했던 영관급 장교는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장병이 수십 년간 바닷속을 지켰다”고 했다. 안 전 함장은 “잠수함 승조원을 갈수록 구하기 어렵다는데 급여를 올리고 진급에 혜택을 줘서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항해를 마친 장보고함은 장비·물자 정리 등을 마무리하고 다음 달 퇴역한다. 장보고급 디젤 잠수함의 사용 연한은 통상 25년 안팎이지만, 장보고함은 우리 군의 철저한 관리·정비 덕분에 여전히 수중 임무를 지속할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국산 잠수함 수출 대상국에 양도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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