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엔비디아가 2년만에 최대폭의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는 소식에 간만에 기술주 주도로 랠리하던 미국 증시는 오전 10시30분이 지나면서 전방위적인 매도 압박에 직면해 속절없이 무너졌다.
나스닥지수 최근 한달간 추이/그래픽=이지혜 |
이날 나스닥지수는 한 때 엔비디아가 5% 이상 오르며 2.6%까지 상승폭을 늘렸다가 2.2% 하락으로 급전직하하며 마감했다. S&P500지수도 1.9% 상승하다 1.6% 추락하며 급반전했다. 다우존스지수 역시 강세를 보이다 0.8% 약세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이는 상호관세 발표로 시장이 흔들렸던 지난 4월8일 이후 장 중 최고점에서 종가까지 최대폭의 하락 반전이다.
이날 엔비디아는 3.2% 떨어졌고 AMD는 7.8% 급락했다. 오라클도 6.6% 내려가 낙폭이 컸다. D램 제조업체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10.9% 추락했다. AI 데이터 분석회사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5.9% 미끄러졌다.
이날 대반전을 초래한 촉매가 무엇인지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전문가들은 엔비디아라는 한 기업의 실적 호조로는 AI(인공지능) 버블 우려 등으로 불안해진 투심을 달래기는 역부족이었다고 평가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수석 전략가인 스티브 소스닉은 "이날 시장의 놀라운 반전은 투자자들의 심리가 상당히 취약해져 있다는 신호"라며 "투자자들이 엔비디아의 실적과 AI 버블이 없다는 확신에 매료됐다면 그렇게 빨리 알고리즘의 이상 현상에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고 시장은 미세하게 흔들리다 결국 강세 기조를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한 반전이 일어났고 추가적인 하락까지 더해졌다"고 지적했다.
네이션와이드의 수석 시장 전략가인 마크 해킷은 이날 증시 하락을 촉발시킨 요인은 분명하지 않지만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서 후퇴하며 채권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측됐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국채는 가격이 상승하며 수익률이 하락했다. 이날 10년물 국채수익률은 4.098%로 전날에 비해 0.03%포인트 떨어졌다.
해킷은 "이는 종합적인 리스크 회피 움직임"이라며 공포지수라고 알려진 시카고 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 지수(VIX)가 급등하며 28을 넘어선 것을 보면 투자자들의 심리가 최악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시장에 유동성이 줄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모트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마이클 크레이머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역레포 잔고에 예치된 현금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며 이는 금융회사에서 유동성이 소진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이 결과 주식이나 가상화폐 같은 위험자산에 압박이 가해진다는 설명이다.
역레포 잔고란 금융회사들이 중앙은행에서 국채를 빌려가는 대신 맡긴 현금이다. 역레포 잔고가 감소한다는 것은 금융회사들이 역레포에서 현금을 빼내 대출에 활용했거나 주식과 채권 등에 투자했다는 의미다.
그간 금융회사들이 역레포에서 돈을 인출해 사용하면서 위험자산 가격이 급등했으나 이제는 역레포 잔고가 줄어 금융회사들이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 여력이 줄었다는 것이 크레이머의 해석이다. 그는 "단순히 말해 지금 시장은 유동성이 크게 감소한 상태"라고 말했다.
댐피드 스프링 어드바이저스의 창립자이자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앤디 콘스탄은 이날 증시 하락에 대해 투자자들이 엔비디아의 실적에서 더 많은 것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엔비디아의 강력한 실적이 11월 들어 부진한 증시를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반등을 촉발시키는데 실패함에 따라 앞으로 수일, 혹은 수주일 동안 증시가 추가 약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개장 전에 발표된 지난 9월 고용지표도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든 요인으로 보인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지난 9월 비농업 부문 취업자수가 11만9000명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5만명 증가를 두 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9월 실업률은 4.4%로 전월 4.3%에 비해 올라갔다. 노동시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고용 증가폭이 다음달 금리 인하를 이끌어내기엔 너무 강한 것으로 나타나자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치 캐피털 마켓츠의 수석 거시경제 애널리스트인 대니얼 테넨가우저는 "9월 고용지표가 12월 금리 결정에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 불확실하다"며 "초기 반응은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어" 금리 인하에 긍정적이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후 몇몇 금융회사들이 9월 고용지표가 노동시장 약화의 근거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분위기가 바뀌었다. JP모간의 이코노미스트인 마이클 페롤리는 지난 9월 고용지표가 다음달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날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금리 선물시장에 반영된 오는 12월 금리 인하 전망은 39.1%로 전일 대비 9%포인트 높아졌다.
미국 증시는 역사적으로 수익률이 강력한 11월 들어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S&P500지수는 지난 10월 말 사상최고치 대비 5% 하락했다. 나스닥지수는 사상최고치 대비 7% 이상 떨어져 전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으로 정의되는 조정 국면에 접근하고 있다. 소형주지수인 러셀2000지수는 전 고점 대비 거의 9% 내려온 상태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증시가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연속 월간 상승세를 이어오며 2021년 8월 이후 최장기 랠리를 지속한 만큼 현재의 조정은 단순한 차익 실현일 뿐이라고 보고 있다.
한편, 이날 할인매장인 월마트는 개장 전 긍정적인 실적을 발표해 주가가 6.5% 올랐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