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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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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워했지만 억울함도…" 아버지 간병하다 '패륜범' 된 아들에 건넨 판사의 위로 [사건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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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 질환 앓는 아버지 홀로 모시던 아들
    수차례 심한 폭행·학대 혐의, 아버지 숨져
    1·2심 법원 징역 6년·취업제한 5년 선고
    법원 "죄질 나쁘지만 불우한 삶 감안" 선처
    "남보다 못한 부모 부양 억울했을 것" 위로


    한국일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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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강원 양양군에서 30대 아들이 조현병을 앓고 있던 아버지(71)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존속학대치사 등)로 구속 기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패륜범으로 보이는 피고인 A(31)씨에게 1·2심 재판부는 법이 허용한 최대의 관용을 베풀었다. 일각에서는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례란 해석이 나온다. 법원은 왜 이런 판단을 했을까.

    조현병 앓는 아버지 수차례 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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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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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월 12일 오후 7시쯤 아버지가 화장실에 다녀온 후 변기물을 내리지 않은 것을 봤다. 격분한 A씨는 길이 60㎝가 넘는 나무 막대기로 아버지의 가슴, 어깨 등을 수차례 찌른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자 머리와 얼굴을 때렸다. 고통을 호소하는 아버지가 벽 쪽으로 몸을 비틀자 발로 등을 걷어차는 등 무차별 폭행했다. 온몸에 멍이 들고 척추와 갈비뼈가 부러진 아버지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날 오후 9시 9분쯤 다발성 손상으로 숨졌다.

    수사기관은 A씨를 존속학대치사, 존속학대, 노인복지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A씨의 아버지를 상대로 한 폭행이 사건 당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2023년 5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아버지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반말 등 폭언을 일삼고 회초리, 주먹, 발 등으로 수차례 폭행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A씨에게 징역 25년을 구형했다.

    법조계는 법조문에 있는 '법정형'을 기준으로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한 양형기준을 참고해 재판부가 정할 수 있는 A씨 혐의의 '처단형' 범위가 징역 5년 이상 45년 이하인 만큼 중형이 선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1심 선고 결과는 의외였다. 이 사건을 심리한 춘천지법 속초지원 형사부는 지난 6월 26일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노인관련기관 5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예상보다 훨씬 낮은 형량이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로 볼 때 중형 선고가 마땅하다면서도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감안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조현병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상당 기간 폭행하는 등 학대했고, 급기야 나무 막대기로 무차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죄질이 좋지 않은 만큼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반성하고 죄책감에 깊이 괴로워하고 있는 점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정신질환으로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점 △조현병을 앓는 아버지를 부양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점 △딱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던 점 등을 감안해 처단형 범위에서 최하 수준의 징역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021년부터 일용직과 택배 기사로 일하며 힘들게 아버지를 부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누나는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해 스스로 생존을 배워야 했던 동생에게 스스로 회복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냈다.

    '패륜범' 된 아들에게 건넨 판사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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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 사건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의 판단도 이와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형량을 유지했다. 지난달 22일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이은혜 부장판사는 법정에 출석한 A씨에게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넸다. 그는 "부모니까 떨쳐낼 수도, 미워할 수 없으면서도 남보다도 못한 부모에게 억울한 마음도 들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아버지를 한 남자로서 되돌아보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좋은 세상을 제대로 즐기고 누려 보지도 못한 채 아팠던 부친의 인생도 굉장히 불행한 것"이라며 "보호자가 아닌 남자로, 한 인간으로 되돌아본다면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A씨는 법정에서 "아버지를 보살피는 마음이 처음에 비해서 부족해지지 않았나 돌이켜본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 돌봄과 치료 등 사회안전망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사회복지 전문가인 박준길 강원사회서비스원 본부장은 "이 시대의 정신질환은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며 "가족이 온전히 감당하기에는 돌봄 부담, 치료 접근의 한계가 있는 만큼,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될 때 환자, 가족, 사회가 모두 안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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