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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단독] 조선업 호황에도 3년째 흉물로…기숙사 놓고 삼성중공업 원하청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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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864실 준공 후 조선업 불황
    협력사 폐업 잇따라 기숙사 운영 중단
    "삼성이 인수 구두 약속" vs "사실무근"


    한국일보

    지난 2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입구에 토사와 낙엽이 흩어져 있다. 사유지 경고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3년째 관리가 되지 않은 기숙사에서는 인기척이 사라졌다. 거제=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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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업 호황기에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건립한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가 3년 넘게 흉물로 방치돼 논란이다. 건물 소유권을 떠안고 폐업한 전 협력사 대표들은 원청업체가 인수하겠다는 구두 약속이 있었다며 매입을 요구하지만 삼성중공업은 사실무근이라며 맞서고 있다. 조선업이 다시 호황기에 접어든 만큼 조속히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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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단지 한쪽에 이불 등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거제=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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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후문을 마주보고 선 협력사 기숙사 단지는 한낮에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산비탈을 따라 다랭이논처럼 층층이 들어선 건물 10개 동은 텅 빈 채 쓰레기와 잡초만 무성했다. 굳게 잠긴 출입문 너머에는 '2022년 2월 28일부터 기숙사 운영 중단, 전기·가스·수도 차단'이라 적힌 안내문과 함께 관리비 독촉장, 경매 고지서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전 삼성중공업 협력사 사장 정병철(65)씨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냉장고랑 TV 등 가전제품은 다 훔쳐갔다"면서 "본드나 담배꽁초, 술병 등도 곳곳에서 발견돼 사실상 우범지대로 변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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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내부 게시판에 2022년 2월 28일 운영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거제=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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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출입문 앞에 관리비 납부 독촉장이 수북이 쌓여있다. 거제=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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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숙사는 2만7,338㎡ 부지에 지하 2층~지상 4층 건물 10개 동, 총 864실 규모로 2015년 준공됐다. 삼성중공업이 대규모 수주를 잇달아 따내며 협력사 노동자 수가 급증한 당시에는 숙소 부족 문제를 해소할 '효자 시설'로 주목받았다. 평균 경사도 23도로 원래는 개발이 제한된 땅이었지만 거제시는 기숙사 건립을 위해 경사도 기준을 25도로 완화하는 도시계획 조례 개정안을 추진했다. 해당 안이 부결되자 기업의 애로 해소 명목으로 별도 심의를 거쳐 허가했다.

    삼성중공업은 협력사 협의회 임원 36명이 약 10억 원씩 부담한 기숙사 분양 비용 중 5억 원에 대해 이자를 지원하고 원금은 매월 기성고(총공사비 중 완료한 부분만큼의 공사비)에서 1,100만 원씩 원천공제했다. 나머지 건축비도 협력사별 개별 대출이 가능하도록 알선했다. 그러나 입주 이듬해부터 조선업이 침체되면서 협력사들이 차례로 도산했고, 기숙사는 7년 만인 2022년 문을 닫았다. 현재 기숙사 소유주 36명 가운데 19명은 자신이 대표로 있던 협력사가 이미 폐업해 사실상 관리·운영 능력이 전무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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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조감도. 거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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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삼성중공업이 건립 당시 협력사가 퇴출될 경우 기숙사 소유권을 책임지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며 "일괄 매입하거나 현 협력사로 승계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호소한다. 2017년 폐업한 배재한(62)씨는 "인력을 모아 주어진 공정의 일을 하는 협력사는 물량 경감에 따라 언제든 퇴출될 수 있고, 통상 사장이 65세가 되면 정리하는 게 관례"라면서 "그럼에도 기숙사를 분양받은 것은 삼성이 인수를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021년 폐업 후 택배 일을 하며 매월 300만 원이 넘는 기숙사 분양 대출금을 갚고 있다는 정덕재(66)씨도 "삼성의 약속이 없었다면 이미 시내에 기숙사를 두고 있는 데다 위치나 용도상 투자할 이유도, 재산권 행사 가치도 없는 기숙사를 사들일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실제 폐업한 일부 협력사는 기숙사 소유권을 승계했는데, 삼성중공업이 1개 층당 1억 원씩 무이자 대출을 지원했다. 익명을 요구한 협력사 관계자는 "파산으로 경매에 나온 기숙사 7채도 삼성중공업의 요구로 협의회가 낙찰받았다"며 "계약서로 명문화되지 않았을 뿐 원청이 다른 협력사에 승계를 약속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은 협력사 기숙사 승계나 인수를 약속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매입 등 활용 방안에 대한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거제시 역시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변광용 거제시장은 "조선업 호황으로 인력 수급과 숙소 문제가 다시 중요해진 만큼 삼성중공업, 협력사 등과 협의해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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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문을 닫아 3년째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거제=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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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협력사 복지 기숙사 상가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다. 거제=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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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제= 박은경 기자 chang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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