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이 2일 대전시청 앞에서 대리운전 기사 사망 사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종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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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기사가 술에 취한 승객에 의해 차에 매달린 채 끌려가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대리 기사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이 고객과 업체 등으로부터 폭언 및 폭력을 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권리가 없어 상시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
2일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유성구 관평동 인근 도로에서 지난 14일 새벽 60대 대리운전 노동자 A씨는 만취한 승객에 의해 운전석 밖으로 밀쳐진 뒤 차량에 매달려 1.5㎞가량 끌려가다 결국 사망했다. 그는 안전벨트에 매인 채 상체가 도로에 노출된 상태였는데,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졌다. 당시 그는 4만원을 받으며 대전에서 청주로 가던 길이었다. 고인은 두 자녀를 키우며 10년 간 대리운전 일을 해왔다.
A씨와 같은 대리 기사들은 고객의 폭언이나 폭행 등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지만, 보호받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사고 당시 고인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고객 차량을 빠져 나왔다면, 음주운전 방조죄로 형사처벌 될 가능성이 있고, 작업을 중지했다면 플랫폼에 고객과 마찰을 일으킨 문제 기사로 분류돼 불이익을 받았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특고·플랫폼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부분의 법적 권리에서 배제돼있다. 이들에게는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작동되지 않는다. 수시로 취객을 상대하는데도 감정노동자로 보호되지 않고, 위험에 처해도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없다. 직장 내 괴롭힘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플랫폼 회사들은 사고가 발생해도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플랫폼은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관리·감독 및 통제하면서도 사고가 발생하면 단순 ‘중개자’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노총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가해자에 대한 엄벌은 물론, 정부와 국회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모든 플랫폼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 개념을 확장한 근로자 추정제도 도입으로 산안법을 전면 적용받을 수 있게 하고, 위험 상황에서 즉시 일을 중단하고 현장을 떠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 190호 협약을 시급히 비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LO 190호 협약은 노동자의 계약 형태와 관계 없이 일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신체적, 정신적, 성적, 경제적 해를 끼치는 행위와 관행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영국·프랑스·독일 등 40여개국에서 비준했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국정과제로 채택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정부는 현재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ILO 190호 협약이 요구하는 폭력 예방 의무, 작업중지권, 감정노동자 보호, 플랫폼 사용자 책임 등이 담겨 있지 않다.
플랫폼노동희망찾기는 “모든 노동자를 폭력과 괴롭힘에서 보호하기 위해 ILO 190호 협약을 즉각 비준하라”며 “일하는사람법으로 뜬구름 잡는 얘기는 그만하고 실질적·구체적 권리 보장을 촉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핑계 저 핑계로 협약 비준을 늦추는 것은 플랫폼 기업만 이롭게 하는 것일 뿐”이라며 “플랫폼 노동자 폭력사건 전담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플랫폼기업에 사용자 책임을 부담하라”고 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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