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요양보호사 대우해야 어르신 대우받는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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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관장 척척 "딸보다 나아요"…어르신 황혼 지키는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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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에서 김순옥 요양보호사가 90대 김모씨와 함께 색칠놀이를 하면서 대화하고 있는 모습./사진=이정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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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간밤 어떠셨어요."
김순옥 요양보호사(71)는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에 들어섰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독거노인 김모씨(95)가 김 보호사를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김 보호사는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더니 주방으로 가 커피부터 탔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들고 김씨에게 지난 밤 무슨 일이 있진 않았는지 살피는 게 그의 첫 업무다.
거동이 불편한 김씨 대신 김 보호사는 가사 업무를 챙겼다. 김씨 요청에 감기약을 가져다주고 세탁기를 돌리는 등 밀린 집안일을 처리했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김씨와 끊임없이 대화했다.
목욕을 돕거나 변을 보지 못하면 직접 관장하기도 한다. 김 보호사는 "노인성 변비가 있으면 배변을 도와줄 때가 많다"며 "아들과 있을 때 3일간 변을 못 봐서 고통스러워했던 경우도 있다. 급하게 연락이 와서 택시를 타고 어르신 집에 갔다"고 말했다.
2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한 아파트 냉장고 모습. 김 보호사는 김씨가 색칠한 그림들을 냉장고에 자석으로 붙여두었다./사진=이정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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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색칠공부'라는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김 보호사가 그림 모임에서 배워온 기법을 하나씩 알려주면서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필요한 용품이 있으면 김 보호사는 직접 미술용 가재도구를 사다 준다.
김씨의 작품을 알아주는 이도 김 보호사뿐이다. 그는 김씨를 위해 집안 곳곳에 그림을 붙여놓고 파일을 만들어 따로 보관한다. 김씨는 "내가 봐도 색칠 참 잘했는데 크게 관심을 안 주더라"며 "어떨 때는 김 보호사가 딸보다 더 나은 거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7년부터 이어졌다. 18년 전 요양보호사를 시작한 김 보호사가 처음 맡은 어르신이 김씨 남편이었다. 두 사람은 김씨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종종 연락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김 보호사는 홀로인 김씨를 위해 독거노인 관련 정부 지원 정책을 알아봐 주기도 했다.
김씨가 아흔을 앞둔 2019년부터 김 보호사는 김씨의 전담 요양보호사가 됐다. 김 보호사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김씨를 살핀다. 김씨에게 자녀 4명이 있지만 자녀들도 고령이고 일부는 해외에 있어 매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 초고령사회 진입…더 중요해진 요양보호사 역할
최근 7년간 독거노인비율. /그래픽=이지혜 디자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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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인구가 지속해서 늘어나면서 요양보호사의 중요성을 더 커질 전망이다. 인구보건복지협회에 따르면 2050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인정자는 올해보다 최대 3.9배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10년간 65세 이상 인구 대비 장기요양 인정자 비율은 매년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돌봄 수요가 폭증하는 후기 고령인구(75세 이상 인구)도 늘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후기 고령인구는 전체 인구 중 8.6%(173만3207명)로 2020년 같은 달 대비 1.6%포인트(p) 올랐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후기 고령자의 절반을 돌봄 인구로 추정하고 있는데 후기 고령자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며 "건강하게 나이가 들더라도 돌봄 수요 증가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노인독거비율과 노인 치매 환자 비율이 늘어난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독거노인은 다른 가구 형태에 비해 우울감을 더 느끼는 경향이 있어 보호사의 돌봄이 필요하다. 자녀 등 보호자 부담 경감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서도 보호사 역할이 중요하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요양보호에 정신적 돌봄이 수반돼야 한다"며 "요양원·요양병원 등 활동이 제한된 곳에 있는 노인은 우울증 발생률이 높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80·90대 고령이 되면 배우자라도 서로 대화하지 않고 돌보지 않는 사례가 있다"며 "이런 경우 공적·사회적인 돌봄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내년 3월부터 전국적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시행한다. 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사는 곳에서 개인 욕구에 맞는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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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에 70만원 찍혔다" 월급도 들쭉날쭉...요양보호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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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요양보호사 중 활동 요양보호사 비중은 올해 10월 기준 22.6%에 불과했다. /그래픽=김지영 디자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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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 중 실제 활동 중인 비중이 20%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격증을 따더라도 열악한 처우 탓에 일하지 않아서다. 요양보호사들은 처우 개선과 함께 고용 불안정,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실제 요양보호자로 일하는 자격증 취득자는 전체의 22.6%(69만9919명)에 불과했다. 그간 자격증 취득자 수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활동 보호사 비율은 20%대에 머물렀다.
취득자 10명 중 8명이 활동하지 않아 요양보호사 공급 부족 상황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지난 4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인구비상대책회의에서는 요양보호사가 2030년 중반까지는 늘었다가 감소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주 종사자인 중장년층 여성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 요양보호사 평균 연령은 61.7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4년 4월 전체 요양보호사 종사자 중 50대 이상은 94%에 달하는 등 고령화 현상이 뚜렷하다.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모양새다. 2022년 기준 요양보호사 월평균 수령 임금은 109만원이었다. 간호사·사회복지사 등 장기요양요원과 비교했을 때 100만원가량 차이가 난다.
업무 환경도 열악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장기요양 종사자 고충상담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국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에는 총 9120건 상담이 접수됐다. 기타 사례를 제외하고는 △임금체불(2983건)△부당업무(업무고충·855건) △산재(직업병·622건)△성희롱(245건) △폭언·폭행(50건) 순이었다.
최근 5년여간 장기요양종사자 고충 상담 현황./그래픽=김지영 디자인 기자. |
◆ 들쭉날쭉 월급, 장기근속 불가능…스트레스 극심한 업무환경
방문요양보호사는 시설요양보호사와 달리 이용자 자택에 직접 방문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 3일 머니투데이가 만난 방문요양보호사들은 열악한 처우 문제를 호소했다. 한 요양보호사의 올해 월급 명세서를 확인한 결과 7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편차가 컸다.
고용 불안정성이 높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방문요양보호사는 월 60시간 이상 계속 근무한 기간이 3년을 채우면 장기근속장려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 대상자가 건강 악화로 시설에 들어가거나 사망할 경우 경력이 단절된다.
일이 중단되고 3개월간 같은 기관에서 다른 일을 구하지 못하면 근속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생계를 위해 다른 기관을 찾아 일을 시작하더라도 같은 기관 내 근속 기간만 인정해주고 있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장려금은 내년부터 1년 이상 근속자도 받을 수 있는데 같은 기관 근속자에만 해당하는 건 그대로다.
지난해 승급체계 마련을 위해 신설된 선임요양보호사 제도도 방문요양보호사에겐 무용지물이다. 선임요양보호사는 5년 이상 근무하고 40시간 승급교육을 이수한 자로 월 15만원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방문요양보호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4년차 요양보호사 임미숙씨(60대)는 "1년간 알코올성 치매 환자를 맡은 적 있는데 어느 순간 일을 열심히 한다며 내가 좋다고 만져보겠다고 했다"고 했다. 서비스 대상자의 보호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도 많다고 답했다.
정신적 고통도 극심하다. 17년차 요양보호사 권은자씨(70대)는 "90대 어르신이 아들에게 폭행당해 피를 많이 흘려 직접 업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며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고 말했다.
요양사들에게 교육·교류의 장이 됐던 서울 시내 쉼터 8곳은 모두 사라졌다. 현재는 광역센터와 권역센터 4곳만 남아있을 뿐이다. 서울시는 쉼터 운영비 대비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시의회 지적에 따라 폐지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존 활동은 남은 권역센터에서도 진행되지만 요양사들은 거리가 멀어 자연스레 참가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3일 서울 광진구 한 카페에서 만난 요양보호사 권은자·임미숙·박순화씨(왼쪽부터)./사진=이정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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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정 기자 crystal@mt.co.kr 이정우 기자 vanilla@mt.co.kr 최문혁 기자 cmh6214@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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