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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기자수첩]약가인하, 제약사 어디로 내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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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릭 중심 제약사, 이익 박해 '정책에 흔들'
    대부분 버티는 장사, 살길 찾아 위탁개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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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약과 바이오 업계 분위기가 요즘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전통 제약사들은 정부의 '제네릭(복제의약품) 약가 인하 정책' 후폭풍으로 구조조정이 예상돼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반면 바이오 업체들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부의 위탁개발생산(CDMO) 지원 발표로 잔뜩 고무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일 바이오의약품 CDMO 특별법을 제정했다. 수출용 바이오의약품 제조업 신설에 따른 통관절차 간소화, GMP 인증 절차·제조시설 기술자문 및 수입특례 규정 등 위탁개발생산에 필요한 지원책을 '패키지'처럼 묶었다.

    바이오 업계에 '당근'을 줬다면 제약 업계에는 '채찍질'을 가했다. 정부는 지난달말 전통 제약사들의 핵심 매출원인 제네릭 약가를 크게 낮추는 약가제도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전통 제약기업들은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제네릭은 고정비가 많이 들어가고 이익은 박하다. 즉 원료를 비롯해 생물학적동등성시험, 품질·제조관리 등 고정비 비중이 높아서 약값 자체를 낮추면 비용 부담에 이익을 거두기 힘들어 진다. 소형 제약사들은 이익은 커녕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

    전통 제약사 입장에선 이번 정부 약가 인하 정책으로 주요 매출원인 제네릭 기반 자체가 붕괴할 위기다. 제네릭 중심의 전통 제약기업들이 신사업으로 CDMO를 염두해 두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당수 제약사들이 이 분야로 눈을 돌리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은 바 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실제로 최근 몇년 사이 한미약품, GC녹십자, 대웅제약, 보령, 휴온스, HK이노엔 등이 CDMO 사업 진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쉽지 않다. 실제 수주 계약을 따낸 제약사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이유는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기존 제네릭 생산설비는 활용이 어렵고 바이오 공정기술 역량도 처음부터 다시 확보해야 해 대규모 설비 투자와 품질 시스템 구축에만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의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 여기에 CDMO의 핵심 고객이 글로벌 빅파마들인 만큼, 내수 시장 중심으로 성장해온 전통 제약사들은 글로벌 네트워크가 부족한 문제가 있다.

    이러한 현실로 CDMO 확대가 산업 전체의 성장동력으로 작동하기보다 특정 기업 중심의 '승자독식' 구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제네릭 수익성 붕괴…캐시카우 찾아 CDMO로 발길

    수출 중심 CDMO를 키우는 것은 국가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에 분명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이 특정 CDMO 기업의 확대만 가속하고 전통 제약사를 압박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산업 내부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CDMO 선두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30~40%대에 이르는 반면, 전통 제약사는 10%대에 머문다. 지금도 '버티는 장사'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높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익성만을 좇아 CDMO로 몰릴수록 결과적으로 제조 역량은 비대해지고, 정작 산업의 근간인 R&D 혁신은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신약 R&D를 활성화하기 위해 제네릭 약가 인하를 추진하는 정부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제네릭 수익 기반이 붕괴될 때 전통 제약사는 어떤 모델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CDMO 외에 제약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경로는 무엇인지, R&D와 제조 생태계를 '전체 산업 기준'에서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합성의약품 중심으로 역량을 다져온 제약기업이 바이오의약품 생산으로 사업을 확대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전통 제약사들은 정작 자신들이 잘하던 영역과 미래 전략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산업의 핵심 동력인 신약 연구개발(R&D)이라는 본질적 가치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 제약기업들의 제네릭 기반이 무너지고 CDMO로 몰리게 된다면 그건 새로운 돌파구가 아니라 막다른 길일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건 '한쪽을 밀고 한쪽을 당기는' 정책이 아니라, 전통 제약과 바이오 신산업이 함께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균형감 있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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