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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찌그러진 달항아리, 완벽을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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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드스톤 서울 '불경한 형태들'展

    이헌정·김주리·김대운 작가 참여

    불완전 작품으로 도예 미학 재해석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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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은 물을 만나 녹고 불과 함께 굳는다. 흙을 다루는 도공들은 수천 년간 이 두 힘 사이의 완벽한 균형점을 찾아왔다. 가마에서 나온 도기의 색감이나 형태가 조금이라도 기준에 못 미치면 수백 점이라도 깨뜨렸고 때로는 가마를 통째로 버리기도 했다. 도예의 역사란 완벽을 향한 집착의 시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러나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도예 작가 3인의 그룹전 '불경한 형태들(Irreverent Forms)’은 이런 도예사(使)가 추구해온 ‘완전함’의 미학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전시장 1층에는 깨진 달항아리 파편이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고 지하에는 물속에서 서서히 해체되는 백자 항아리의 영상이 흐른다. 완벽함을 거부하고 무너짐을 받아들이는 이들 장면은 도예라는 장르 자체를 뒤집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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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에는 이헌정(58), 김주리(45), 김대운(33) 등 세대가 다른 작가 3인이 참여했다. 세 사람 모두 ‘도예가’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이헌정은 도예로 시작했지만 조각과 건축으로 경계를 확장해왔고 김주리는 흙을 주요 소재로 조각과 설치를 주로 한다. 김대운 역시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위해 흙을 빚고 불에 굽는다는 도예의 방법론만 가져온 듯 보인다. 그러나 셋은 모두 흙이 가진 불안정성과 도예가 가진 예측 불가능함에 끌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 전시된 작품들은 가마에 의한 형태의 변형, 물로 인한 침식, 균열과 흐름 등 흙의 취약성을 전면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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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이헌정 작가의 도자 연작은 언뜻 무지갯빛 광택을 내는 달항아리를 떠올리게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딘가 어긋나고 이지러지는 등 불안하다. 항아리의 하부는 은은한 청록빛의 우아한 전통 도자인데 상부는 투박한 금속 돔이 자리한 멋스러운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가는 “통상 물레질이란 완벽함을 추구하기 위해 하는 행위지만 나는 그 완벽함에서 벗어나되 아름다움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개입하고 행위한다”고 설명했다.

    깨진 달항아리 파편이 목재 구조물 위로 층층이 쌓인 김대운 작가의 ‘페르소나 #2’도 눈에 띈다. 작가는 점토가 말라가는 과정, 도기의 깨짐과 이어 붙임 등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과 상처, 회복과 화해를 이야기한다. 날카롭게 조각난 파편을 그러모아 서로에 기대 균형을 이루게 한 ‘페르소나 #2’는 서로 다르고 각자 취약한 인간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끔 이끈다. 지하층에는 붉은 흙으로 빚은 1980년대풍 단독주택 조각이 물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작품이 자리했다. 도시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서울의 풍경을 점토의 형태로 기록한 김주리 작가의 ‘휘경’ 연작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체되는 점토 집을 바라보는 경험은 불완전하고 덧없는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일본의 ‘와비사비’와 닮았다.

    전시는 글로벌 대형 화랑인 글래드스톤이 한국 도예 장르에 주목해 1년 가까이 기획한 자리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끈다. 갤러리 측은 “글래드스톤은 그간 전세계 지점에서 독창적인 도예 작가들의 전시를 꾸준히 선보여왔다”며 “이번 전시는 전통적 도예 관념에 도전하는 동시대 작가들의 실험을 조명하는 자리이자 도예를 매개로 글래드스톤과 한국 현대미술의 관계를 심화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3일까지.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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