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시집살이와 고부간의 갈등이 여성 난임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는 호르몬의 불균형 등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이때는 귀비탕(歸脾湯) 등이 약이었다. 챗GPT에 의한 AI생성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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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서빈(西賓) 직을 맡았던 전사습(錢思習)이란 자가 있었다. 서빈은 향교나 서원 등에서 유생들을 가르치고 예학이나 경학을 지도하는 관직이었다. 그런데 전씨 부부는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 자식이 없었다. 전씨는 자식이 없는 것을 부인에게 탓을 돌렸다. 설상가상으로 전씨 부부는 각방에서 지낸 지 벌써 몇 해가 되었다.
전씨의 부인은 시집을 오면서부터 시집살이에 시달렸는데, 자식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더욱더 남편과 시어머니로부터 구박을 받았다. 그래서 부인은 항상 더더욱 울분에 쌓여 있었다.
전씨에게는 절친한 한 의원이 있었다. 그 의원은 전씨 부부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한 번은 어느 날 의원이 전씨 댁에 방문했는데, 부인이 하인에게 크게 화를 내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의원은 옆에 있던 다른 하인에게 “아니 부인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하인은 “마님은 대감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한소리라도 들으면 저렇게 하인들에게 울분을 이기지 못해 저렇게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그날 밤은 한숨도 잠을 이루지도 못하십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의원은 이런 일을 목격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지만 남의 집안일이라서 모르는 체하고 거들지 않았다.
그날도 의원은 친구인 전씨를 보러 왔다. 술상을 내어 온 전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의원에게 “내가 이토록 후사를 잇지 못하니 조상님들은 물론이고 향교에서 후학들의 낯을 볼 면목이 없네. 그래서 첩을 들여야겠네. 좋은 처자가 있으면 연결 좀 시켜 주시게나.”라고 하는 것이다.
의원은 깜짝 놀라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의원은 ‘전사습은 내 친구이고, 후사가 없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치 남의 일인 양 지켜만 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무책임하다고 여겼다. 사실 불임은 어느 정도 의학적인 범주에 속했기 때문이다.
의원은 전씨에게 “내가 자네의 부인을 한번 진찰을 해 봐도 되겠는가? 만약 문제가 있다면 내가 처방을 내 보도록 하겠네. 혹시 아는가? 내 처방으로 후사가 이어질지 말이네.”라고 했다.
의원은 진맥을 통해서 보다 자세한 병증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날을 잡아 여종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부인을 진찰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현맥(弦脈)이 느껴졌고, 비위기능도 떨어져 있었다. 이는 간기가 막혀 있고 비위기능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의원은 부인에게 평소 불편한 증상을 말해 보도록 했다. 그러자 전씨 부인은 “저는 시집 온 이후 한 번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매번 대감과 시어머니로부터 갖는 모욕을 겪으면서 가슴 한가운데 응어리진 기운이 떠나질 않고 한숨만 납니다. 이제는 은곡지사(隱曲之事)까지 문제가 생겨서 월경이 방울방울 조금씩 새듯이 오래 지속되었고 주기가 전혀 일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의원은 진찰을 마치고 나서 전씨에게 “자네의 부인이 울화병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부인은 평소 울분과 성냄이 심해 간을 상하고, 또한 비(脾)가 허하여 화(火)가 동하여 혈이 포궁(胞宮)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네. 따라서 마땅히 간화(肝火)를 시원하게 하고 비기(脾氣)를 보해야 하네.”라고 했다. 그러자 전씨는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나. 처방이 필요하다면 처방을 해 주시게.”라고 했다.
의원은 “내가 처방을 해 주는 것은 어렵지 않네. 다만 처방을 복용해서 부인의 월사가 정상으로 되돌아오면 이제 앞으로는 부인에게 화를 내거나 구박하지 말아야 할걸세.”라고 했다. 전씨는 겸연쩍어하면서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을 했다.
의원은 약방에 가서 가미귀비탕과 소요산을 지어 다음 날 다시 전씨 집에 가지고 갔다. 귀비탕(歸脾湯)은 한마디로 생각이 많아서 비(脾)를 상한 데 쓰는 처방이다. 반면에 소요산(逍遙散)은 화를 많이 내서 간기가 울체되었을 때 쓰는 처방이다. 이 두 처방은 비허(脾虛)와 간울(肝鬱)로 인해서 생긴 생리불순이나 무월경에 적합하다.
의원이 전씨 집에 가 보니 전씨는 출타 중이었고 부인의 시어머니만 있었다. 시어머니는 “자네가 어인 일인가?”하고 물었다. 의원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시어머니한테 모두 말하고서는 그래서 이렇게 처방을 해 왔다고 했다.
의원은 시어머니에게 약을 건네주면서 말하기를 “이 약을 복용하면 며느리 포궁의 병은 저절로 낫고, 곧 태(胎)가 생길 것이니 굳이 첩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며느리를 구박하는 일만 없으면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약은 놓고 가게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이 가고 나서 마루 한귀퉁이에 처방을 던져 놓았다.
전씨가 저녁에 돌아와 대청마루 귀퉁이에 처방이 있었다. 전씨는 ‘의원 친구가 처방을 놓고 갔나 보구나.’라고 생각하고서는 친구 말대로 이 두 처방을 복용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과연 부인은 월경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서는 부인도 마음이 편해졌는지 화를 덜 내게 되고, 전씨 부부는 다시 한방에서 같이 머물며 지냈다. 다행스럽게 부인은 다음 해에 아들을 낳아 집안이 평온해졌다.
불임이나 난임의 원인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있다. 여성의 난임은 배란 장애, 호르몬 불균형, 자궁과 난관 문제, 만성 스트레스 등이 흔하고, 남성의 난임은 정자 수 저하, 정자 운동성 저하, 생활습관 문제, 호르몬 불균형, 정계정맥류 등이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대부분 여성에게 그 원인을 돌렸다.
옛날에는 시집살이나 고부갈등 등의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서 호르몬의 불균형을 유발하고 결국 생리불순으로 인한 무자(無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는 귀비탕이나 소요산 등으로 마음의 울분을 덜어내는 것이 중요한 치료법이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설씨의안(薛氏醫案)> 西?錢思習, 子室, 年三十, ?無嗣, 月經淋無期, 夫婦異處者幾年矣. 思習欲?娶妾, 以謀諸余. 余曰, 此鬱怒傷肝, 脾虛火動, 而血不歸經. 乃肝不能藏, 脾不能攝也. 當?肝火·補脾氣, 遂與加味歸脾, 逍遙二藥, 四劑, 送至其家. 仍告其姑曰, 服此病自愈, 而當受胎, 妾可無娶也. 果病愈, 次年生子. (서빈 전사습의 아내가 나이 서른이 되도록 아직 자식이 없고, 월경이 조금씩 새듯이 오래 지속되며, 주기가 전혀 일정하지 않았고, 부부가 떨어져 지낸 지 몇 해가 되었다. 사습이 첩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하여 그 일을 나에게 의논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이는 울분과 성냄이 간을 상하고, 비가 허하여 화가 동하여, 그리하여 혈이 경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곧 간은 저장하지 못하고, 비는 조섭하지 못한 것이다. 마땅히 간화를 청하고, 비기를 보해야 한다.” 이에 가미귀비탕과 소요산, 두 약을 네 첩 지어 그의 집에 보내주고, 또 그의 시어머니에게 일러 말하였다. “이 약을 복용하면 병은 저절로 낫고, 곧 태를 받을 것이니 첩을 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과연 병이 나았고, 다음 해에 아들을 낳았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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