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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일사일언] 과연 괜찮을까 이 정도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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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이 정도로는 아무 문제도 없어.”

    “이게 죄라면 대한민국 사람 절반은 감옥에 있을걸.”

    심심치 않게 들었을 법한 말 아닌가. 편의를 위해 기준을 낮추고, 편리를 위해 절차를 뛰어넘고, 편익을 위해 규정을 무시할 때 흔히 쓰는 자기 합리화의 표현이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라는 아픈 표현 대신, 보통 사람들은 그걸 대세나 관행, 혹은 현실 감각이라 부른다.

    아서 밀러의 연극 ‘다 내 아이들(All My Sons)’은 도덕적 해이가 가져온 비극을 다룬다. 주인공 조 켈러는 비행기에 들어가는 실린더 헤드를 제조하는 군수공장 사장이다. 어느 날 그는 몇몇 실린더에 금이 간 사실을 알게 된다. 재생산하면 납품일을 지킬 수가 없다. 혹 이 일 때문에 하청이 끊길까 두려웠던 그는 불량품을 납품한다. 어쩌면 작은 부품 하나가 사고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 믿었던 듯하다. 하지만 조의 불량 부품 때문에 조종사 2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비극은 부메랑이 되어 가족에게 되돌아온다. 가족에겐 군용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비행 임무 중 실종된 아들이 있다. 조는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아내는 아들이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아니, 믿으려 한다. 아들의 사망을 인정하는 건, 불량 부품으로 젊은 조종사들을 숨지게 한 남편의 죄를 인정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아들 크리스와 연인 앤까지 모두가 도덕적 딜레마에 갇히게 된다. 누구도 죄인이 아니지만 모두가 죄의 그림자 속에서 흔들린다.

    연극이 보여주는 건 거창한 비극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일상에서 조금씩 타협하며 지나치는 순간들의 총합이 어떤 파국을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에 가깝다. 조 켈러는 ‘잭 더 리퍼’가 아니다. 기준을 조금 낮추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데 익숙했던 보통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무게를 자신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비극은 낯설지 않고, 그래서 더 불편하다. ‘괜찮아, 이 정도쯤.’ 그동안 무심코 뱉었을 이 말의 의미를 오래 곱씹어 보게 된다.

    [김일송 책공장 이안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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