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1980년 12월 8일 40세
비틀스 멤버 존 레넌.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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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 멤버 존 레넌(1940~1980)은 1980년 12월 8일 밤 10시 50분 미국 뉴욕 자택 앞에서 정신 병력이 있는 25세 남자가 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범인은 레넌을 살해한 이유를 훗날 몇 차례 밝혔다. 종신형 복역 중이던 2000년 가석방 심사를 앞두고 인터뷰에서 “나는 사랑받기 위해 이전의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길을 찾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그를 쏘라고 강하게 명령했다”(2000년 9월 27일 자 23면)고 했다.
존 레넌 피살. 1980년 12월 10일자 7면. |
2008년엔 “유명해지기 위해 살해했다”고 더 명확한 이유를 댔다. “그 당시에 나는 실패한 내 인생에 화가 나 있었다. 그를 죽일 때 ‘악평’이더라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존 레넌을 위선 떠는 인물로 잘못 생각했다고도 했다. “나는 존 레넌이 화려한 건물에서 살며, 사랑의 말 따위나 지껄이는 ‘사기꾼(phony)’이라고 오판했다.”(2008년 8월 21일 자 A28면)
존 레넌은 15세 때인 1955년 비틀스 전신인 밴드 쿼리멘을 만들면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폴 매카트니와 함께 비틀스로 활동했다. 이후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가 차례로 합류했다. 초기 대부분 곡은 레넌과 매카트니가 함께 썼다. 1962년 4인조 밴드로 굳어진 비틀스가 낸 첫 곡 ‘러브 미 두(Love me do)’도 둘이 만든 노래였다.
미국 JFK공항에 도착한 비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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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비틀스 인기는 대단했다. 1964년 2월 7일 비틀스가 미국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렸을 때 3000여 명 소녀 팬들이 열광했다. 이틀 후 TV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했을 때는 미국인 7300만명이 시청했다.
레넌은 1966년 영국 일간 이브닝 스탠더드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제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 로큰롤과 기독교 중 어느 것이 먼저 사라질지 모르겠다”고 발언해 파문을 일으켰다. 일부에선 비틀스 앨범 화형식이 열리기도 했다. 레넌에게 총을 쏜 범인은 레넌의 발언을 살해 동기로 꼽기도 했다.
로마 교황청은 당시 “이제 그 사건은 끝났다. 비틀스는 발언을 후회하고 있다”(1966년 8월 16일 자 7면)고 곧바로 용서했다. 사후 28년 지난 2008년에도 다시 문제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교황청 신문인 오세르바토레 로마노는 사설을 통해 “레넌의 발언은 갑작스럽고 과도한 성공에 취한 한 청년의 단순한 ‘자만심’에 불과했다”면서 “비틀스는 해체된 지 38년이 지났지만 시간을 거슬러 살아남아 한 세대 이상 팝 음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2008년 11월 24일 자 A32면)고 평가했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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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1970년 4월 10일 해체했다. 비틀스 소속사는 이날 매카트니가 비틀스를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레넌과 매카트니의 불화가 원인이란 말이 나왔다. 훗날 매카트니는 부인했다. 매카트니는 2021년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비틀스 해체는 레넌과 아내 오노 요코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해체를 선동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사람은 우리의 존이었다. 그는 어느 날 방으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난 비틀스를 떠날 거야’라고. 존은 요코와 함께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것이 비틀스가 해체하게 된 진짜 이유다.”(2021년 10월 12일 자 A33면)
반면 오노 요코는 2006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비틀스 해체를 자신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1981년 1월 5일자 1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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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요. 나는 아시아 출신의 한 여성이었을 뿐이에요. 비틀스같이 큰 밴드의 해체 이유를 한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밴드 해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봐야죠.”(2006년 4월 28일 자 A28면)
비틀스 해체 후인 1971년 발표한 싱글 ‘이매진(Imagine)’은 레넌의 대표곡이 됐다. 반전·평화·인류애 메시지를 담았다. 레넌은 “뭔가를 위해 죽을 일도 죽일 일도 없다(Nothing to kill or die for)”고 노래했다.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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