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이명옥의 아트&멘토]
황실이 사랑한 괴짜 궁정 화가
‘초현실주의 할아버지’ 아르침볼도
◇황제의 실험실로 간 화가
꽃과 채소로 사람의 상반신을 표현한 대표작 '사계' 연작(1563~1573) 중 '봄'. /루브르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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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년 밀라노에서 명성을 떨치던 서른여섯 살의 아르침볼도에게 운명의 초대장이 도착했다. 오스트리아 빈 합스부르크 궁정에서 일하라는 황제의 부름이었다. 초청에 응한 아르침볼도는 곧 황실의 총애를 한몸에 받게 된다. 아르침볼도와 가까이 지낸 이탈리아 학자 파올로 모리지아는 1592년 출간한 ‘밀라노의 고대사’에서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궁정에 들어간 그는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황제는 그의 공적에 걸맞은 급여를 지급하고 여러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했다. 고귀하고 영감이 넘치는 이 화가는 희귀하고 섬세한 예술 작품으로 귀족들을 감탄하게 했고 황제는 크게 만족했다.”
'사계' 연작 중 '여름' '가을' '겨울'(왼쪽부터). 계절에 어울리는 과채를 동원했다. /루브르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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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1564년 페르디난트 1세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 막시밀리안 2세가 황위를 계승한 이후였다. 북부 르네상스의 물꼬를 튼 인물로 평가받는 막시밀리안 2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예술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황제의 학문적 호기심은 궁정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빈 근교의 수렵용 별장 일대에는 오늘날 근대 동물원의 시초로 거론되는 궁정 동물원이 조성된다. 스페인과 신대륙에서 들여온 코끼리와 매, 야생 고양이 등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상상 속 존재였던 희귀 동물이 모여들었다. 당대 최고의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지우스를 초빙해 황실 약용 식물원을 조성하고 아메리카 대륙과 포르투갈령 아시아, 콘스탄티노플에서 들여온 진귀한 식물들을 연구하고 재배하게 했다. 황제는 아르침볼도에게 이 방대한 자연사 컬렉션의 특별한 접근 권한을 부여했다. 현장 경험은 과학적 수준의 정밀 스케치로 이어졌다. 새 화풍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만물을 얼굴에 담다
'4원소' 연작 중 '불'. 불의 이미지를 지닌 양초와 부싯돌, 총 등의 사물로 사람을 형상화했다. /빈 미술사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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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실이 그의 대표작 ‘사계’와 ‘4원소’다. ‘사계’ 연작은 사계절의 특징을 지닌 과일과 채소, 나뭇가지와 뿌리 등을 조합해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유년·청년·장년·노년의 인간 생애 또한 상징한다. ‘봄’은 80여 종에 달하는 꽃이 모여 청년의 얼굴을 이루는데, 오늘날 식물학자들이 종(種)까지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여름’은 복숭아 뺨과 오이 코를 가진 얼굴로 무르익은 성숙을 보여주고, ‘가을’은 포도와 버섯 등으로 이뤄진 얼굴이 수확의 기쁨을, ‘겨울’은 고목과 뒤틀린 뿌리로 구성된 얼굴이 인생의 황혼기를 암시한다. 거친 나무 목덜미에서 돋아난 싱싱한 레몬은 봄을 향한 희망과 자연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특히 눈여겨볼 작품은 ‘겨울’이다. 노인의 어깨에 걸친 짚 망토에는 막시밀리안 2세를 뜻하는 문장(紋章)이 새겨져 있다. 황제의 통치가 자연의 섭리처럼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림의 의미를 꿰뚫어 본 황제는 1573년 아르침볼도에게 ‘사계’ 연작의 복제본을 주문해 작센의 선제후(選帝侯) 아우구스투스에게 외교 선물로 보낸다. 아르침볼도의 그림이 궁정 장식품을 넘어 제국의 문화적 우수성을 과시하는 선전 도구로도 활용된 것이다.
'4원소' 연작 중 '공기' '물' '흙'(왼쪽부터). /빈 미술사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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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가 시간의 흐름을 나타냈다면 ‘사원소’는 고대 자연철학이 말하는 만물의 근원적 힘을 초상화로 표현한 연작이다. ‘불’의 얼굴은 횃불과 포탄, 대포 등 불과 관련된 사물로 채워져 있다. 가슴 부분의 쌍두독수리 펜던트와 갑옷 장식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상징으로 황제의 막강한 군사력을 드러내는 장치다. ‘물’은 해마와 문어를 비롯해 60여 종의 수중 생물이 모여 여성의 얼굴을 이룬다. 인물이 착용한 진주 귀걸이와 목걸이는 제국의 해상 통치력과 교역망으로 축적된 부를 상징한다. ‘흙’은 사자·코끼리 등 육지 동물들을 조합해 얼굴을 구성하는데, 광대한 영토와 그 위에서 펼쳐지는 귀족적인 사냥 문화를 암시한다. ‘공기’는 매·공작과 같은 여러 새들로 얼굴을 이룸으로써 하늘까지 뻗어나가는 황제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방대한 자연사 컬렉션을 압축한 카탈로그이자, 만물이 황제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정치적 이미지다.
◇궁정의 경이로운 방
아르침볼도 자화상. /프라하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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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무대를 프라하로 옮겨 보자. 1576년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 루돌프 2세가 새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아르침볼도의 작품 세계는 또 한 번 변화를 맞이한다. 루돌프 2세는 정치와 외교에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수집과 학문,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따를 자가 없었다. 1583년 황제는 수도를 빈에서 프라하로 옮기고 궁정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시킨다. 결혼도 거부한 그는 자신의 호기심과 지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당대 최고의 과학자와 예술가, 연금술사와 점성술사, 마법사까지 프라하로 불러 모았다. 요하네스 케플러와 티코 브라헤 같은 저명한 천문학자를 궁정으로 불러 연구를 지원했다.
동시에 황제는 연금술과 점성술에도 깊이 매료됐다. 황금과 불로장생의 묘약을 위해 유럽 전역에서 모여든 연금술사와 마법사로 성은 가득 찼고, 성 안팎에는 연금술 실험실이 속속 들어섰다. 프라하는 대우주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지적 열기로 끓어오르는 도시가 된다. 그 정점에 자리한 공간이 쿤스트캄머(Kunstkammer), 일명 경이로움의 방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져온 희귀 수집품과 정교한 예술품, 각종 과학 기구들이 한데 모여 소우주처럼 전시됐다. 이곳은 세상의 지식을 집대성하는 실험실이자, 외국 사절과 귀빈이 방문했을 때 제국의 막대한 부와 지적 수준, 황제의 세련된 취향을 보여주는 외교 무대이기도 했다.
루돌프 2세를 그린 '베르툼누스'(1591). 싱싱하고 다채로운 꽃과 곡식, 과채로 초상화를 완성했다. 황제가 무척 흡족해했다고 한다. /스코클로스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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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적 대전환기의 한가운데 아르침볼도가 있었다. 그는 프라하 궁정에서 학자들과 연금술사들을 만나며 자연의 숨겨진 힘과 우주의 상호 연결성에 대한 최신 지식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 절정의 순간에 탄생한 작품이 루돌프 2세를 풍요와 계절을 관장하는 신에 비유한 초상화 ‘베르툼누스’다. 멀리서 보면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꽃·과일·채소를 조합해 황제의 얼굴을 구성했음을 알게 된다. 황제를 풍요의 결실이자 수확을 관장하는 신으로 찬양한 정치적 목적이 담긴 궁정초상화다.
◇천재를 완성한 후원
'채소 기르는 사람'. 초상화처럼 보이지만 뒤집으면 정물화가 된다. /알라폰초네 시립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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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은 계속됐다. 같은 시기 아르침볼도는 황제를 즐겁게 하기 위한 유희적인 작업도 선보인다. ‘채소 기르는 사람’은 뒤집어 보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하는 반전(反轉) 그림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보는 방향에 따라 그림의 내용도 달라진다는 것. 정방향에서 보면 각종 채소가 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는 정물화처럼 보인다. 그런데 작품을 180도 돌리는 순간 그릇은 모자, 양파는 불룩한 뺨, 당근은 길쭉한 코로 바뀌며 한 남자의 얼굴로 변신한다. 기발한 뒤집기 그림에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라는 아르침볼도의 유쾌한 통찰의 메시지가 숨어 있다.
1587년 아르침볼도는 프라하 궁정을 떠나 고향 밀라노로 돌아간다. 미국 국립미술관 기록에 따르면 황제에게 여러 차례 간곡한 청원을 올린 끝에 가까스로 귀향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밀라노에서도 그는 황제를 위한 작업을 정성껏 이어간다. 1592년 루돌프 2세는 자신을 위해 헌신한 화가에게 전례 없는 방식으로 답례한다. 아르침볼도를 궁정 고문으로 임명하고 당시 예술가에게는 극히 이례적인 팔라틴 백작 작위와 1500굴덴에 이르는 막대한 포상금까지 내린다. 황제의 절대적 신뢰 위에서 이루어진 신분 상승은 아르침볼도가 제국의 이미지를 설계하는 핵심 동반자로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화가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를 얻은 지 1년 뒤 밀라노에서 생을 마쳤다. 아르침볼도의 성공 스토리는 준비된 재능이 후원자의 재력을 만났을 때 위대한 걸작이 탄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징한 사례일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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