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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4 (토)

    ‘넛지(nudge)’ 그리고 ‘배려(配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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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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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고기 식용에 질겁하는 어느 대기업 회장이 비서실에 개고기를 먹는 간부들의 명단을 취합해 보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개고기를 즐긴 간부들은 이 소문을 듣고 전전긍긍했습니다. 그러나 회장은 얼마 후 그들에게 예쁜 강아지를 한 마리씩 선물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른바 넛지(nudge)의 한 예입니다. 나아가 따뜻한 배려입니다.

    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특정 방향으로 은근슬쩍 조금씩 밀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으로 강제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미국 시카고대학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와 법률가 캐스 선스타인이 공저한 ‘넛지(Nudge)’란 책을 통해 알려진 개념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면 간섭이나 일방적 가르침으로 여기고 이를 싫어하여 반발하는 것이 현대인, 특히 젊은 세대의 성향이지만, 교묘하게 이벤트나 엔터테인먼트의 형식을 빌려 메시지를 전하면 별 저항 없이 쉽게 받아들여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넛지를 이용하여 큰 효과를 거둔 것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의 사례입니다. 남성용 소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을 줄여 청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직접적으로 주의를 촉구하기보다 소변기 안쪽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넣어 소변을 보는 남성들이 ‘조준 사격(?)’을 하는 재미로 파리를 겨냥하도록 하여 소변기 주변의 오염을 줄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넛지는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지만 유연하고 비강제적으로 접근하여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자유주의적 개입주의(libertarian paternalism)’에 바탕을 두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됩니다. 근저에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권유하기보다는 대중의 비이성적인 행동 패턴을 알아내고 이를 활용하여 그들의 선택을 조종한다면 이는 넛지의 부정적 활용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 영양사가 교내 식당에서 음식의 종류는 바꾸지 않고 오로지 음식의 진열이나 배열만 바꾼 경우에도 특정 음식의 소비량이 25% 증가하거나 감소할 정도로 학생들의 음식 선택에 영향을 끼칩니다. 이에 따라 만약 영양사가 학생들의 균형 있는 영양 섭취를 유도하기 위한 선한 의도에 의한 것이라면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아니한 다른 의도에 의한 경우라면 문제가 남습니다. 특히 정치인이 선의를 가장하여 교묘하게 대중을 선동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넛지에는 긍정, 부정의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넛지보다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것이 배려입니다. 배려는 어떠한 의도를 갖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존중하고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고 도와주는 능동적 태도입니다. 지하철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음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잠시 잡아주고, 층간 소음을 줄이려 조심하는 태도 등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행동도 소중한 배려입니다. 또한,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시민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필요한 만큼만 물자를 가져가는 절제의 모습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공동체 차원의 소중한 배려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늦가을 까치 먹이로 감나무에 감 몇 개를 남겨두었습니다. 달구지를 끄는 소가 온종일 애를 썼다며 짐 일부를 지게에 지고 소달구지 옆을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동물까지도 배려했습니다.

    배려는 인간관계와 사회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배려는 사랑이나 감사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자랑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 이 낱말이 법률 용어로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산업 보건과 관련한 ‘안전 배려 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타인에 대한 배려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소한 남의 잘못을 관용하지 못하고 들추어내어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배려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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