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지만 지적장애로 이름 말하지 못해
형 강운용씨 "동생 보살피며 남은 삶 보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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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어렸을 땐 너무 가난해서 먹고살기도 버거웠죠. 형으로서 잘 챙겨주지 못한 게 평생 한입니다."
강운용씨는 약 50년 전 잃어버린 동생 강운송씨(현재 나이 73·사진)를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강씨는 동생이 실종되기 전 특별한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한 게 아쉽다며 말끝을 흐렸다.
운송씨는 1976년 5월 12일 서울 영등포역에서 어머니와 이동하던 중 군중에 휩쓸려 사라졌다. 당시 그는 본가였던 충남 서산에서 강씨를 만나기 위해 상결하던 길이었다. 이날 이후 운송씨는 약 50년간 행방불명 상태다.
운송씨의 나이는 24세로 성인이었으나, 지적장애를 갖고 있어 스스로 집을 찾아올 수는 없었다. 자신의 이름이나 집 주소를 말하지 못해 타인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등포역 인근 경찰과 상인들 가운데 운송씨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다.
강씨는 운송씨를 찾기 위해 수십년간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경찰에 지문과 DNA를 등록하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최근에는 경찰과 함께 실종자를 수색할 기회를 얻어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송씨의 생사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그의 모친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운송씨를 찾았다고 한다.
강씨는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수소문해 봤지만 동생을 찾을 길이 없더라"며 "운송이가 장애가 있다 보니 자기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장애인보다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동생이 실종된 이후 어머니의 상심이 컸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동생을 꼭 찾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게 아쉽다"고 덧붙였다.
강씨는 실종자 가족이 겪는 제도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관련 기관을 방문해도 개인정보 제한을 이유로 충분히 협조받지 못하고, 실종 전단지를 붙일 공간도 마땅치 않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찰과 동행하지 않고 실종자 정보를 모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번 경찰과 함께 다닐 수도 없다 보니 가족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며 "주민센터나 경찰 등 공공기관에서 전단지 붙여줄 게시판이라도 좀 늘렸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운송씨는 키 170㎝에 50㎏대의 마른 체구이며, 오른쪽 엄지 주변에 화상 흔적이 있었다. 지적장애로 인해 말투는 다소 어눌한 편이다. 실종 당시에는 남색 바탕 흰 점무늬 남방과 회색 바탕 흰 줄무늬 바지를 착용했다.
강씨는 운송씨가 건강하게 돌아와 남은 생을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밥 굶는 게 일상이었던 어렸을 땐 동생에게 뭐 하나 해준 게 없던 거 같다"며 "이젠 둘 다 일흔이 넘는 나이가 됐다. 지금이라도 곁에서 보살피며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또 "동생이 젊은 나이에 실종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겠나"라며 "지금은 생사도 불분명하지만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운송이를 꼭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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