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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0 (수)

    [트럼프 스톡커] 美 "H200 중독되라" 하니, "수입 제한" 맞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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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경환 특파원의 트럼프 스톡커(Stocker)

    트럼프, 엔비디아 고사양 'H200' 中 수출 허용

    매출 25% 정부 몫···적자 탈피, 4월 방중 포석

    '제2 딥시크 충격' 우려···안보 "자살골" 지적도

    중국도 'AI 종속' 걱정···쿼터제 수입 제한 가능성

    젠슨 황 로비에도 주가는 등락···韓HMB엔 '호재'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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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고 끝에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에 대한 중국 수출을 허락했다. 기존에 허용했던 ‘H20’보다는 성능이 압도적으로 우월하고, 최첨단 칩인 ‘블랙웰’보다는 사양이 낮은 제품이다. 엔비디아의 수출량을 늘려 천문학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 재정에 보탬이 되게 하고, 중국의 기술 자립 속도는 늦추게 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또 내년 4월 방중을 앞두고 중국과 화해 분위기를 조성해 희토류 수출, 대두 수입 조치를 유지하면서 같은 해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까지 불리하지 않은 무역 여건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엔비디아의 대(對)중국 수출이 늘어나면 이 회사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SK하이닉스(000660), 삼성전자(005930)에도 당연히 호재가 된다. 지난 10월말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공언한 블랙웰 포함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이 약속대로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034730)그룹, 현대차(005380)그룹, 네이버(NAVER(035420))클라우드 등에 공급될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AI 기술 자립을 노리는 중국이 H20 때처럼 구매를 크게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민 카드를 덜컥 받아들였다가 추후 무역 갈등이 또 빚어졌을 때 미국이 이를 무기화하면 또 다시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까닭이다. 중국 당국이 H200을 일부 수입하더라도 이에 대한 의존도를 빠르게 줄이도록 기업들을 재촉할 수도 있다. 나아가 중국이 H200으로 ‘딥시크’보다 더 충격적인 AI 모델을 만들어 미국 기업들을 추격하거나, 군사용으로 쓰면서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도 잠재적인 불안 요인이다. 중국의 미묘한 입장 때문에 엔비디아의 주가도 등락을 거듭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온전히 호재로만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트럼프 “엔비디아 ‘H200’ 中수출 허용”…매출 25%는 정부가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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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 시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리고 엔비디아의 H200을 중국에 수출하도록 허용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미국이 강력한 국가 안보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엔비디아가 중국과 다른 국가의 승인된 고객에게 H200 제품을 출하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며 “시 주석도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H200 판매액의 25%는 미국에 지불될 것”이라며 “이 정책은 미국의 일자리, 제조업은 물론 납세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엔비디아의 최첨단 칩 블랙웰과 곧 출시될 예정인 ‘루빈’은 이번 합의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상무부가 세부 사항을 마무리하고 있고 이 같은 방식의 접근은 AMD, 인텔, 다른 위대한 미국 기업들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미국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 시절인 지난 2022년 최첨단 AI 칩을 중국에 수출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에도 AI 패권 유지, 안보 위협 등을 이유로 이 조치를 유지했다.

    세계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에 대한 판매 길이 막히자 황 CEO는 여러 통로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2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서 취재진과 만나 “블랙웰 문제도 시 주석과 논의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화당까지 포함한 미국 정치권 전체가 뒤집어졌다.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블랙웰 관련 발언에 “적성국이 블랙웰을 군사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반발이 빗발쳤다.

    여론이 악화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30일 부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 앞에게 엔비디아 반도체 얘기를 일절 꺼내지 않았다. 이후 같은 달 31일 녹화돼 지난달 2일 방영된 CBS의 시사 프로그램 ‘60분’ 인터뷰에서도 ‘중국에 최첨단 반도체들을 팔도록 엔비디아를 허락할 것이냐’는 진행자 질문에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최첨단은 미국 말고는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2년 안에 우리는 반도체 시장의 40~50%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우리는 중국이 엔비디아와 그 문제를 처리하도록 할 것”이라며 “중국을 제압하는 것보다 협력함으로써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CBS 인터뷰에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적잖게 당황했다. 정작 황 CEO는 같은 시기 ‘APEC CEO 서밋’ 행사를 계기로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그룹, 현대차그룹, 네이버클라우드 등에 블랙웰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총 26만 장의 GPU를 공급하기로 발표하고 돌아갔기 때문이다. 황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간 이른바 ‘깐부 치맥(치킨과 맥주) 회동’ 열풍도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재정적자 줄이고 中 ‘AI 굴기’ 억제, 4월 방중 대비 포석···“자살골”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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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AI 칩은 사실상 전량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에서 생산된다. WSJ는 H200 칩이 미국의 안보 심사를 거쳐 대만에서 자국으로 실려 왔다가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경로로 수출될 것으로 예상했다. 엔비디아 반도체가 미국을 거친 뒤 수출돼야만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나 수입세를 통해 매출의 25%를 가져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H200을 공급하기로 한 것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재정 적자폭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파악된다. 외교 전략적으로 내년 4월 중국 방문을 앞두고 양국 간 갈등 요인을 줄이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직후 자신이 내년 4월 먼저 중국을 방문하면 이후 시 주석이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나 워싱턴DC로 답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AI 규제를 어느 정도 풀어줘야 중국의 희토류 수출, 대두 수입 조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AI 분야에서 중국의 빠른 추격을 억제하려는 목적도 있다. 9일 블룸버그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의 최신 칩 ‘어센드’를 기반으로 한 AI 플랫폼 ‘클라우드매트릭스384’가 엔비디아의 블랙웰을 기초로 한 ‘NVL72’와 비슷한 성능을 갖췄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어 화웨이가 내년에 이 어센드 반도체를 수백만 개 생산할 가능성도 이번 수출 허용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H200을 중국에 수출하더라도 미국이 18개월에 달하는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는 내용이었다. 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H200 수출로 중국이 미국의 기술 생태계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이를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미국의 다른 기업들과 정치권의 시각도 많다는 점이다. 챗GPT의 오픈AI, 제미나이의 구글 등은 그간 대중국 반도체 제재를 통해 AI 모델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패권을 유지했다. 올 2월 중국의 딥시크 충격 이후에도 미국이 AI 모델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한 배경에는 미중 간 반도체 기술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도 알리바바, 바이두 등 중국계 기업들이 H200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한 번 더 약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 ‘진보연구소(IFP)’의 알렉스 스탭 CEO는 AFP통신에 “H200이 기존에 수출이 허용된 H20보다 6배는 더 강력하다”며 “엄청난 자살골”이라고 혹평했다.

    구글의 자체 텐서처리장치(TPU)로 위협을 받던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로 활로를 개척한 점도 업계에서는 화두다. 엔비디아는 지난달 19일 올 3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4분기(11월~내년 1월) 매출 전망에 중국 수출분을 전혀 포함하지 않았다. 엔비디아가 만약 H200을 중국에 팔기 시작하면 AMD 등 경쟁 업체들을 더 멀리 따돌릴 수 있다.



    중국도 ‘AI 종속’ 의심 속 “수입 제한”···엔비디아 주가는 ‘등락 거듭’, 한국 HBM 업체엔 ‘호재’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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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정치권도 엔비디아 첨단 반도체의 대중국 수출을 두고 여야 할 것 없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의회는 중국이 엔비디아의 칩을 국방용으로 쓸 수 있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향후 30개월 동안 상무부 장관이 첨단 칩을 중국 수출 허가를 거부하도록 하는 ‘안전하고 실현가능한 수출 반도체법(SAFE법)’을 상원에 초당적으로 발의해 놓은 상태다.

    9일 WSJ도 수출용 엔비디아 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안보 검토가 실효성이 있는 조치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반도체가 일단 중국으로 건너가면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 어디에 쓰이는지 알 길이 없는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출 규제를 푼 8일에도 블룸버그·로이터통신은 미국 법무부가 ‘H100’과 H200을 중국으로 밀반출하려 한 혐의로 중국계 남성 2명을 구금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과 황 CEO는 중국도 미국 칩이 찝찝해 안보용으로는 쓰지 않고 화웨이 등 자국 반도체를 쓸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외교가와 업계, 주요 외신은 중국도 일단 H200을 일부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했다. H200은 미국이 기존에 수출을 허용했던 저사양 칩 H20과 성능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제품인 까닭이다. H20의 경우는 화웨이 등 기존 중국 반도체와 큰 성능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중국 당국이 철저히 구매를 금지하고 있다.

    물론, 중국이 H200에 지나치게 의존할 정도로 수입량을 늘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찮게 나온다. 중국 기업들이 H200을 너무 널리 쓰면 이제 막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는 화웨이, 캠브리콘 등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탓이다. 동영상 플랫폼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나 중국 최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 텐센트 등이 엔비디아 생태계에 종속될 위험도 있다. 중국은 올 7월 15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대중 수출 통제 제한을 해제하면서 CNBC를 통해 “중국 시장을 미국산 반도체에 중독시킬 수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모욕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중국 당국이 ‘쿼터제’와 같은 규제로 H200 수입량을 조절하고 자국 산업 보호에 힘을 쓸 가능성에 무게를 실리는 이유다.

    실제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한 질문에 즉답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관련 보도에 주목했다. 중국은 두 나라가 협력을 통해 ‘윈윈’을 실현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나아가 “중국이 반도체 생산 자립 추진에 따라 H200 칩에 대한 접근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H200 구매자들에게 중국 업체들이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이유를 반도체 구매 요청서에 적어 당국에 제출하도록 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승인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면 중국 정부가 엔비디아 반도체 수입 물량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미중 무역 갈등과 AI 기술 패권 경쟁이 복잡하게 맞물리면서 엔비디아의 주가도 예상보다 크게 탄력받지는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나온 8일 1.72% 오르며 강세를 보였지만, 9일에는 0.31% 하락하며 상승장에서 약세를 보였다. 월가에 수출 허용 효과를 더 지켜보겠다는 신중론이 아직 남았다는 뜻이다.

    엔비디아가 중국 쪽 수출 물꼬를 조금이라도 다시 틀 경우 이는 한국의 HBM 업체에 분명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의 H200은 141GB(기가바이트) 용량의 5세대 HBM(HBM3E)를 탑재한 제품이라 메모리 소비량이 매우 크다. 중국의 수요가 늘 경우 SK하이닉스는 물론,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도 관련 공급량을 늘릴 수 있다. 다만 미국의 AI 반도체는 중국의 희토류에 대응하는 최대 무역 전략 무기라서 외교·기술적 불확실성이 대단히 크다는 점은 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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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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