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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김병기 ‘필향만리’]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왕자불가간 래자유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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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 사는 은자(隱者)들은 더러 미치광이 행세도 한다.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 접여(接輿)가 대표적 사례이다. 접여는 어느 날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큰소리로 노래 불렀다. “봉(鳳)이여, 봉이여! 나타나지 않는 봉새여! 어찌 그리도 덕이 쇠했단 말인가? 지난 일은 따져 말할 필요가 없고, 다가오는 일은 오히려 쫓아갈 수 있나니…. 오늘날 정치에 종사한다는 것은 위험할 따름이다.” 노래의 의미를 알아차린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그와 얘기를 나누려 했으나 그는 잰걸음으로 자리를 피해 버렸다.

    중앙일보

    往: 지날 왕, 諫: 아뢸 간, 猶: 오히려 유, 追: 쫓을 추. 지난 일은 따져 말할 필요 없고 다가오는 일은 그래도 쫓아갈 수 있나니. 34x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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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鳳)새는 덕이 있는 훌륭한 왕이 나타날 조짐을 알리는 새이니 봉새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덕이 있는 왕이 나타날 조짐이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공자는 덕을 갖춘 왕을 찾아 주유하고 있으니 접여의 눈에는 그게 안타깝게 보였다. 그래서 “아서라, 그만두시오! 지난 일은 접어두고 이제라도 새 길을 찾아가시오!”라는 의미의 충고를 남기고 떠나버린 것이다.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 왕은 도울 방법이 없다. 왕의 자리를 누리는 데에만 혈안인 사람에게 바른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다치기 십상이다. 1년 전 우리에게 접여처럼 다치기 전에 물러나라고 말하는 현자가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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