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호 논설위원 |
민중기 특별검사가 이끄는 ‘김건희 특검’이 큰 일을 했다.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 국민의힘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과도 광범위하게 접촉하거나 금품을 준 의혹을 끄집어낸 것이다. 특검은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0순위로 거론돼온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2018∼2019년 현금 4000만원과 까르띠에·불가리 등 명품 시계 2개(1000만원 상당)를 줬다는 진술을 통일교의 핵심 자금책인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으로부터 받았다. 금품 전달 시점 전후로 전 장관은 통일교 내부 모임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통일교 일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는 ‘특별보고’가 작성돼 한학자 통일교 총재에게 전달됐다는 진술도 나왔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통일교에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의혹과 대단히 흡사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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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 ‘산 권력’ 의혹 캐내
채 해병 특검, 구명 로비 허구 밝혀
내란 특검, ‘공범 몰이’ 한계 입증
또다른 친명계 전직 의원도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수천만원대 금품을 받았고 그의 주선을 통해 통일교 3인자 이모씨가 민주당 당직을 맡았다는 진술도 나왔다. 윤 전 본부장은 “2017년~2021년엔 국민의힘보다 민주당과 가까웠다”면서 대선의 해였던 2022년 현 정부의 장관급 4명 등과 접촉했다고 법정에서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최측근인 정진상씨 이름까지 거론됐다(정씨 측은 접촉설을 부인했다).
‘김건희 게이트’ 수사만도 힘들었을 텐데 살아있는 권력인 민주당 인사들의 비리 의혹을 줄줄이 드러내 ‘통일교 게이트’까지 터뜨렸으니 민중기 특검은 자의였든 타의였든 사정기관으로 할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국민의힘과 통일교의 금전 커넥션을 집중 부각하며 ‘정교분리’를 위반한 제1야당과 통일교의 동시 해산을 외쳐온 민주당이 실은 똑같은 범죄를 자행했을 의혹을 빼박으로 캐냈다. 다만 왜 이 빛나는 수사 결과를 발표도, 기소도 안했는지는 유감이다.
원래 정권의 비리 의혹은 야당이 캐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유약하고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다 자중지란에 빠져 그런 소임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대신해 민중기 특검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해준 셈이니 박수받을 만하다. 민중기 특검은 김건희 특검이 종료되는 대로 공수처의 수장을 맡으면 어떨까. 이번 같은 ‘초당적’ 수사력이라면 출범 이후 4년간 ‘기소 2건, 구속 6건’에 그쳤던 공수처의 추락한 명예를 살려줄지 모른다. 다만 이번처럼 여당의 비리 의혹이 인지됐는데도 사건번호만 부여해놓고 기소를 기피했다는 논란은 재연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다.
다른 특검들 역시 본의 아니게 공을 세웠다. 지난달 28일 종료된 ‘채 해병 특검’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 9명에 대해 10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외엔 모두 기각돼 기각률 90%의 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채 해병 특검의 존재 이유였던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은 전담팀까지 두고 수사했지만, 입건도 못 했다. 김건희 여사 계좌관리인 이종호씨와 김장환·이영훈목사 등을 배후로 보고 압수수색까지 했지만, 김 여사에 로비가 전달된 증거는 찾지 못하고 종교탄압 논란만 불거지게 했다. 이를 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장에서 채 해병 특검을 공개 언급해 그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동을 통해 특검은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임성근 구명 로비’가 실체 없는 ‘설’에 불과했음을 밝혔으니 평가받아 마땅하다. 관련 수사 지연 책임을 물어 ‘같은 편’인 오동운 공수처장을 기소한 점도 남다른데, 이와 관련해 청구한 두 전직 부장검사에 대한 영장은 다 기각돼 동력을 잃었다. 야당 빼고 민주당·조국혁신당 추천으로만 구성된 점 등의 이유로 위헌 심판 제청을 당한 점도 눈길이 간다.
오는 28일 종료될 ‘내란 특검’은 영장 기각률이 46.1%다. 김건희 특검(90%) 보다는 낮다는 걸로 위안을 삼는 모양이나, 일반 형사사건 기각률(22.9%)보다는 훨씬 높다. 게다가 한덕수 전 총리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빅 3’ 피의자들 영장이 줄줄이 기각된 점이 뼈아플 것이다. 기각 이유가 “혐의 및 법리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란 점도 특검에 재앙이다. 법원에 제시한 증거·정황과 논리가 혐의 소명에 부족하다는 얘기다. 특검 수사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특검은 빅3 영장 줄기각을 통해 뜻하지 않게 공을 세웠다. 총리조차 국무회의 소집 직전까지 몰랐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뜬금포식 계엄 선포의 책임을 부하 공무원들에게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법적으로 묻는 시도가 과연 맞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 점이 그것이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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